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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PDI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의하는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PDI를 개인에게도 확장하여 적용하겠다. 이를테면 PDI가 낮은 개인은 조직 내의 부당한 권력 분배와 부적절한 권력 행사에 대한 반감이 큰 사람이며, PDI가 높은 사람은 이런 부조리를 수용하거나 동조하려는 경향이 큰 사람을 의미한다.
이 글이 혁신 담당 사무관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까닭은 기획자면서 과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온갖 문제제기를 수용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문제의 정의 자체를 직접 해야 하는 입장이고, 이걸 또 윗선으로부터 허가까지 받아야 하므로 본인은 물론 윗선까지 PDI가 낮은 사람일수록 혁신 실적을 내기 유리한 입장이다.
우선 PDI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해 보기 전에 혁신의 의미에 대한 고찰을 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예전에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하겠다.
혁신을 못 하는 한국형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혁신과 개선을 구분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혁신을 추진하는 사람도, 기획하는 사람도, 구현하는 사람도 혁신의 뜻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 혁신의 혁 자는 바꿀 혁(革) 자를 쓴다. 혁명의 혁 자와 같은 한자다.
본디 혁명이란 역성혁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왕조의 성씨를 바꾸고 천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여기서 역성이 탈락하고 천명을 바꾼다는 뜻의 혁명이라는 단어만 남아 사용되고 있다. 군주의 자리가 세습되지 않는 사회로 변화한 역사적 흐름과 몹시도 어울리는 현상이라 생각한다.
비록 혁신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혁명이라는 단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현대사회에서 혁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은 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혁신이라 부르는 현상이나 기술들을 잘 살펴보면 세상을 뒤집어놓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터넷이 그랬고, 스마트폰이 그랬으며, 인공지능이 그랬다. 이미 우리는 일상에서 혁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를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혁신을 일종의 혁명이라 생각한다. 혁신이 일어나면 기존 체계가 붕괴하고 단기간에 큰 파급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미한 개선을 혁신이라 착각하는 기획자들이 많다. 혁신을 기획하는 위치에 앉아 월급을 받아먹으면서 혁신이 가져올 파급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니 혁신이 올바르게 추진될 턱이 있나.
심지어는 혁신을 명령한 사람도 혁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있다. 일단 지시를 하달받았으니 아랫사람들은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하는데, 상세한 지침도 없고 업무 분업에 대한 프로토콜도 없다.
당시에는 그저 한국 공직사회의 답답한 모습에 대하여 지적하는 입장으로 글을 작성하였다만 최근에는 이게 한국 공직사회만의 문제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PDI가 높은 집단에서는 다들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특히나 '정부혁신 성과 만들어 와.' 하고 위에서 막연한 주문을 하는 상황 자체가 PDI가 높은 조직의 특징이다.[1] 이런 조직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런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이제와서 개인이 개선하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하다. 국민 정서상 그렇다. 당장 높은 PDI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법으로 금지하고 낮은 PDI국가의 문화를 강요한다고 생각해보자. 2020년의 대한민국 국민 정서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다. 당장 조그만한 권력이라도 쥐는 순간 이를 정도 없이 휘두르는 사람들이 한둘인가. 아수라장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자, 현실로 돌아와 보자. 이제 와서 대한민국의 PDI를 극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나 사무관은 공직사회의 구성원이 아닌가. 아마 필자나 다른 국민들보다도 공직사회의 권력 거리에 대해 생각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PDI가 높은 조직에서 혁신을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실효성도 있고, 성과 지표도 우수하게 뽑히는데 과장님이 결재까지 쉽게 해 준다면? 최고 아닌가? 이런 요술망치같은 기획을 뽑을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