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 명의 사회복무요원이지만 그 이전에 작가이자 개발자이자 스타트업 CTO다. 후자의 정체성들과 관련된 강연 요청은 사회복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므로 일정이 맞고 재미있어 보인다면 거의 대부분 수락하고 있다. 덕분에 KCD 2019 같은 좋은 추억도 남길 수 있었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수만 있다면 강연료를 전혀 받지 않고도 다니고 있다. 어차피 못 받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하지만 사회복무요원으로서의 필자를 초청하는 경우는 기준이 확 올라간다. 필자는 이를 사회복무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기에 병역법에서 정한 노역 시간 외에는 절대로 수락할 생각이 없다. 그러다 보면 또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진다.
강연의 취지가 마음에 들고, 전화 준 공무원의 진심이 느껴져서 필자가 수락하더라도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출장을 요청하는 것이므로 공문 한 장이면 출장 허가는 쉽게 난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우선 필자의 개인 출장으로 처리할 경우 출장비를 안동 노동청에서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애초에 공익의 출장은 안동 노동청의 본 업무가 아니므로 당연히 예산이 편성되어 있지 않다. 안동 노동청은 없는 예산을 따와서 필자의 출장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혼자 출장을 다녀오다 사고가 나면 처리가 곤란하기 때문에 인솔공무원이 동행해야 한다고. 그러면 복무지에서는 하루에 인원이 두 명 비는 데다가, 없는 예산을 짜내서 출장비도 2인분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가장 깔끔하게 해결하려면 강연을 요청한 기관에서 공무원이 차를 타고 안동까지 와 필자를 데려갔다가, 일정이 끝나면 다시 안동으로 되돌려 놓으면 된다. 그러면서 출장비는 해당 기관이 자체 예산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다들 난색을 표한다.
강연은 초청하고 싶지만 부담은 우리 청에 지우려는 기관뿐인 것이다. 안동 노동청의 부담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피곤하게 다른 지역에 무료로 강연하러 다녀올 이유는 없으므로 앞으로는 관공서 초청을 수락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고로 군인을 보고 싶으면 치킨을 싸 들고 부대에 면회를 가는 게 상식이다. 기관에서 버스 대절해서 안동 노동청을 방문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으면 서로가 좋지 않은가. 안동 노동청 5층에는 대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