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병과 사람들은 필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필자는 어느 모임에 가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의 개성 있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 편입니다. 호기심이 많기도 하고, 관찰력이 좋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제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고 특별해 보이지 뭡니까. 그래서 어딜 가면 항상 이런 말을 합니다.
"역시 이 중에 정상인은 나밖에 없어."
그리고 놀랍게도 어느 모임을 가도 무수한 욕설과 신변에 대한 위협이 답변으로 돌아옵니다. 힝.
이 시리즈도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제게는 참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들인데, 이걸 한번 재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그 맛집을 주변에 소문내고 싶은 욕구와 비슷 하달 까요?
"이렇게 특별한 사람들을 나 혼자서만 알고 있자니 너무 아까워!"
류동훈 이사
오늘의 주인공은 상상텃밭의 류동훈 이사입니다. 아무래도 복무 중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데 큰 제약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상상텃밭 사람들을 자꾸 인터뷰하게 되네요. 이 시리즈를 시작하고 나서야 요즘 대인관계가 협소해졌음을 깨닫고 교회에도 다시 등록했어요.
류동훈 이사는 문과 출신으로 통계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차려서 2년째 운영하고 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합니다.
아니 무슨 난생처음 보는 사람처럼 행동하냐. 방금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사우나도 하고 아침도 먹고 다 했으면서. 설마 아까 그 바나나우유 안 사줬다고 삐졌냐?
류동훈 이사가 박천건 인턴에게 일을 가르치는 장면
Q2. 눈치 없이 왜 이러나. 인싸답지 못하다. 우리는 오늘 처음 본 거고, 나는 너를 인터뷰하러 멀리서 찾아온 거다.
이거 또 또 이상한 소리 하네. 알았다. 바나나우유 쭉 마시고 출발하자. 출근할 시간이다.
결국 바나나우유를 얻어먹는 데 성공한 필자
Q3. 쪼옵. 쪼오옵. (빨대로 바나나우유 마시는 소리) 아 한 번만 어울려 달라. 부탁이다.
후. 알겠다. 대신 바쁘니까 짧고 간략하게 하자. 얼른 출발하자. 납땜 밀렸다. 이거 빨리 못 하면 오늘 야근 각이다.
Q4. 알겠다. 베스트 드라이버인 나만 믿어라. 승객의 목숨을 내 목숨과도 같이 소중히 여기는 운전기사다.
... 난 파리 목숨 취급받기 싫은데.
작업 중인 류동훈 이사
Q5. 굉장히 열심히 작업을 하고 계시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어떤 일인가?
LED PCB에 전선을 납땜하고 있다. 완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사용하면 편리하겠지만, 우리는 LED를 한 번에 수 천 만원씩 구매하기 때문에 섣불리 구매를 결정할 수 없다. 이렇게 다양한 회사의 제품을 조금씩 구매해 테스트를 진행해 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오늘 밤 해가 지고 나면 LED로 실험을 할 것이다. 이번에는 원하는 만큼 성능이 나와 주는 제품이 있으면 좋겠다.
대부분 기대에 못 미쳐 폐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생해서 작업했는데 그게 허사가 되는 기분이라 많이 허탈하다.
Q6. LED 실험? PCB? 농업회사에서 전자공학 실험도 하나?
식물공장은 LED로 식물에게 빛을 공급한다. 따라서 LED 자체의 성능도 중요하고, 회로를 설계하는 역량에 따라서 효율도 크게 달라진다. 전기는 조금만 사용하면서 우수한 품질의 채소를 많이 생산하는 게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러다 보니 아무 제품이나 사 와서 꽂을 수 없다. 반드시 실험을 해 보고, 전력 소모량 대비 광합성 효율을 따져봐야 한다. 가장 성능이 뛰어난 스마트팜을 가장 저렴한 값으로 만들려면 원자재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깐깐하게 따져볼 것이 많다. 덕분에 농업회사지만 기초적인 전자공학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Q7. 멋지다. 그러면 전자공학을 전공했나?
아니다. 통계학이다. 안타깝게도 전자공학 교과과정은 배우지 못하였다. 회사에 막상 인력이 모자란 순간이 오니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배워나가게 되더라. 다행히 군 복무 시절에 기초적인 전자기기를 수리하거나, 납땜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어찌어찌 잘 따라가고 있다.
Q8. 아 그런가? 커리어가 특이한 것 같다. 늦었지만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수영을 좋아하는 류동훈이라고 한다. 음. 자기소개는 부끄러우니 이만하자. 나는 부끄럼쟁이라서 인싸들의 문화가 너무 어렵다.
Q9. 알겠다.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상상텃밭은 뭘 하는 회사인가?
가장 진보한 기술로 가장 오래된 산업을 이끌어 가 보려는 기업이다. 농업분야에서 기술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농촌에 가 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계시고, 그분들은 도입비용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기술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신다. 상상텃밭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첨단 기술을 농가에 보급하려고 애쓰는 회사다.
Q10. 그렇구나. 그러면 이 회사를 왜 창업하게 되었나?
할아버지가 농업인이셔서 농업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할아버지 손을 잡고 모내기를 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힘들었다.
처음 상상텃밭 이야기를 듣고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가 조금 더 편하게 농사를 지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한국에는 많은 농부들이 정성스럽게 농사를 짓지만 신기술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그리고 농업은 경험과 노하우가 사실상 진입장벽이 되는 산업인데, 우리는 기술력으로 이 격차를 해소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구든지 쉽게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회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Q11. 신기하다. 원래 꿈이 사업 쪽이었나?
계속 바뀌었는데, 어느새 이쪽으로 정착해 버린 것 같다.
Q12. 아직 대학생 신분이고, 원래 농업을 하던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요즘 젊은이들이 농업으로 진입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전에 4개 도시에서 1200명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육체노동 때문에 젊은이들이 농업을 기피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육체노동도 문제지만 생각보다 많은 젊은이들은 물려받을 땅이 없어서 농업을 시도조차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깜짝 놀랐다. 농업은 일종의 금수저 직종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창업 이후에도 돈 들어갈 곳이 굉장히 많았다. 농업은 돈 많이 먹는 산업이 맞는 것 같다.
Q13.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정부에서 청년 농업인을 유치하기 위한 지원사업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물려받을 땅이 없어도 농지은행 등의 제도를 통해 저렴한 값으로 땅을 임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처럼 어느 정도 기반을 갖게 된 농업벤처에 합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갓 입문한 농업인은 연 매출 100만 원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회사 직원으로 들어가면 월급은 안 밀리고 나온다.
지금은 미래농업팀 수경재배 분야 채용공고만 올라가 있는데 조만간 시설원예분야나 개발자 공고도 나올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 콜드 메일로 먼저 연락을 줘도 된다. 채용 문의나 상담은 recruit@sangsang.farm 으로 연락 부탁드린다.
Q15. 어휴.. 기회주의자들.
회사 잘 되면 너도 좋지 뭐.
Q16. 그새 작업을 다 끝낸 것 같다. 손이 상당히 빠르다.
처음에는 나도 많이 미숙했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반복 숙달이 중요하고, 메타인지(교육학 용어,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능력)가 중요하다. 이리저리 방법을 바꿔 가면서 최적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17. 이제 그럼 LED 실험을 시작할 것인가? 구경해도 되나?
LED 실험은 해가 진 다음 할 것이다. 농장이 시골에 있다 보니 밤이 되면 주변에 빛이 없다. 해가 질 때까지 다른 일을 할 거다. 자, 이걸로 갈아입고 짐도 챙겨서 따라와라.
실험복을 입을 때에는 헤어스타일에 주의해야 한다
Q18. 실험복 아닌가! 박천건 인턴 인터뷰 때 입어봤다. 그러면 식물에 영양을 주러 가는 건가?
네가 우겨서 구매한 실험복 아닌가. 뭘 놀라는 척이냐. 얼른 입기나 해라. 식물에 영양을 주는 것도 있지만 조금 다른 일을 하러 간다.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기록해야 한다. 데이터가 하나하나 자산이다. 좋은 데이터가 있어야 좋은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Q19. 어떤 것을 기록하나?
다양하다. 예를 들면 여기 잎 끝 색이 약간 변했다. 일종의 질병이 발생한 것이다.
Q20. 어, 진짜다. 그러면 어떡하나? 먹어도 되나?
질병도 종류가 많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은 전염되지만 이 경우는 영양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미량원소를 적게 줬는데 드디어 실험 결과가 나온 거다. 이런 식물은 색이 변한 부분만 떼어 내고 먹으면 된다. 하지만 상품 가치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잎 일부가 잘려나간 채소를 구매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공장에서 품질관리가 중요하듯 식물공장에서도 품질관리가 중요하다. 동일한 환경에서 대량의 식물을 기르기 때문에 품질관리가 비교적 쉽지만, 실수하면 큰 손해가 발생한다.
영양관리 중인 류동훈 이사
Q21. 그럼 품질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품질관리의 핵심은 양액에 있다. 양액은 영양소가 녹아 있는 액체다. 이 부분은 이민우 이사가 전문성을 갖고 있으니 그쪽에 물어보길 바란다. 어차피 인터뷰할 거잖아? 여담인데 이민우 이사의 얼굴과 이름을 붙여 '닥터 민우'라는 양액 제품을 전국에 출시하려던 계획도 있었지만 본인이 너무 부끄러워해 이름을 바꿨다.
Q22. 그렇구나. 굉장히 하는 일이 많아 보인다. 상상텃밭에서 일하다가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농사를 짓다 보면 생각지도 못 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출근하는데 입구에 움직이는 개똥이 있길래 신기해서 가까이 가 봤더니 개똥이 아니라 살모사였다. 살아 있는 살모사를 실제로 본 적이 있는가? 119를 불러서 도움을 받았다.
경고표지
일을 하고 있는데 동네 어르신들이 비닐하우스 문을 벌컥벌컥 열어보셔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CCTV 촬영 중이라는 경고표시를 부착했고 그 뒤로는 이런 일이 많이 줄었다. 밤새도록 불빛이 번쩍거리는 비닐하우스가 동네에 새로 생겼으니 얼마나 신기하셨을까, 이해는 간다.
잘 크고 있는 식물들 앞에서 행복해하는 류동훈 이사
Q23. 가장 뿌듯했을 때는 언제인가?
항상 뿌듯하다. 잘 크고 있는 식물들을 보면 배고프다. 삼겹살에 쌈 싸 먹어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