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요즘 이것을 빼놓고는 상대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바로 MBTI 다.
나는 E형과 I형의 차이 퍼센테이지가 겨우 2~3% 밖에 나지 않는다.
그만큼 애매모호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그냥 나는 내가 좋을대로 배려가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나는 'E'형 인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E형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양'해야 할 '고독'을 나는 사랑한다.
MBTI 이론에 의하면 E형 인간은 사람들 속에서 복작이는 것을 좋아해야 맞는 스토리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시즌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특히나 노력한다.
외부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기술을 나는 고독을 일삼으며 터득했다.
혼자서 여행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고
걷고 있으면
내 안 어디에선가 에너지가 비실비실 흘러나온다.
그럴 때는 내 얼굴이 점점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곧 기분이 좋아진 나는 '힐링을 하고 있다'는 긍정감과 함께 나의 우울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난 기가 쭉쭉 빨린다.
어렵게 어렵게 모아둔 나의 에너지가 타인과 함께 있을 때면
너무나도 금방, 쉽게 기가 밖으로 방출되고 마는 것이다.
'아까워 죽겠다'는 생각을 한게 한두번이 아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그러다보니 나 또한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고
상대방의 취향에 신경을 기울이고
또 그러다보니 나는 원하지 않는 무엇을 하게되고
결국 집에 돌아와서 남는 것은 짧은 한숨과 피곤함 뿐이다.
돈을 쓰고 시간을 쓴 나의 보람이 고작 부정적인 반응 뿐이라니.
더 힘이 빠져버린다.
이따금씩 나는 고민한다.
부족사회를 이루던 인간은 오늘날에도 사회적 동물인 것인데,
이렇게 혼자가 편해서야 되려나, 미래의 경조사를 위해서는 사람관계를 쌓아야하지 않을까?
계속해서 혼자 있기를 고수했다가는, 언젠가는,
내가 좋아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더이상은 선택권이 없는 고독을 만날 수 밖에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난 이 책을 읽고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이 고민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마음이 차라리 가벼운 것을 보니 적당한 답을 찾은 것도 같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작가는 일주일 뒤 친구와 저녁약속이 있다. 그리고 이내 마음 속으로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때 약속을 한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온다.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자동응답기가 답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으,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단 말이야.'
그렇게 혼자임을 즐기던 작가는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약간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늘 이런 식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좀 되다보면 - 며칠 밤을 연속으로 혼자 보내거나, 며칠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연속으로 일하거나 - 한동안은 기분이 괜찮고, 편안하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러다가 무언가가 변하고, 이상한 자의식이 스멀스멀 마음에 깃든다..'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우울해지곤 하는 내 마음과 똑같다.
난 고독에서 오는 행복감을 물씬 즐기고 있음에도 갑자기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
변덕이 심한건지, 유별난건지.
근데 작가도 그런가보다. 책에 의하면 작가의 지인도 그런다고 하니..
우선 나 스스로를 별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위로가 된다.
나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의 생각을 통해
내 마음이 위로받는 것, 책을 읽는 이유로 꼽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혼자가 편한,
- 오랜 친구만 편한,
-사람들과의 대화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낯을 가리는,
-의도적 고립을 자처하는,
-술을 힐링의 수단으로 삼는,
-주체적인 인생을 꿈꾸는,
-'우리'라는 단어가 부담스러운,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혹은 겪었던,
-애정결핍이 있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높은,
-아직 마음 속에 상처 받은 어린아이를 품고 사는.
슬프게도 이 책은 작가 캐럴라인 냅의 유작이 되었지만,
이 책을 만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작가와 나의 정서적 거리가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책을 읽는 이에게 큰 위안이 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내가 책의 화자가 되어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선사하는 책인 것 같다.
그런 면면에서 이 책은
가히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덧댐말*
나는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데, 이건 체질적인 성질이다.
근데 이 책을 읽으면 왠지 술이 만병통치약인 것만 같이 여겨진다.
작가는 알콜중독으로 힘들어하던 자신을 그만두기 위해
술을 끊었고, 이 과정을 글로 기록한 <드링킹>이라는 책도 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 드링킹을 두고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꼽는데
아직 나는 읽기 전이다.
오호라,
바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