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을 읽고
머리 속이 자질구레한 쓰레기로 가득 차 있을 때
나오는
저의 고질적인 버릇이 있습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집을 읽는 것 입니다.
매일 굴러가는 나의 하루를 왠일인지 수월하게 지나가게 둘 수 없을때,
요컨데 책에 대단한 집중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음악도 시끄럽게만 느껴지며
내리쬐는 햇살에 짜증만 더해지는,
그런 날, 그런 찰나가 언제나 그랬듯이 저를 찾을 때면
저는 하는 수 없이 하루키의 단편집을 읽습니다.
목이 마를 때 한 잔의 물을 단 숨에 마시듯,
저는 그의 단편집을 숨도 쉬지 않고 금세 읽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책 또한 첫 페이지를 넘기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
짧은 시간만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34세. 기혼녀. 일본 소설에도, 일본 문화에도 관심이 없는 제가
왜 유난히 하루키의 글에는 마음을 두는 것일까요?
나의 취향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그의 배경에도 저는 하루키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갈 때마다
오른손은 필사를 하기에 바쁘고 눈동자는 활자를 소비하는데 분주합니다.
예외는 거의 없습니다.
짧은 기담이 5편 담겨있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혹시나 책을 읽다가 집중의 방향을 잃게 되어도 길어봤자 3초 이내에
다시 이야기 속으로 흡입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실제라는거야, 아니야' 라는 의문이 읽는 내내 들지만
사실 실제건 아니건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죠.
책을 어려움 없이 쭉 읽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저를 뒤흔들어버린 문장을 만났습니다.
"정답이 꼭 필요할 때는 정답을 내려주기로 했어."
이 문장이요, 이 문장이 표정 없이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제 몸뚱이와 가슴을 송두리채 흔들어버렸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저는 아마... 스스로 대략적인 답을 유추해보자면..
정답이 필요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떤 목적에 대한 정답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웃음이 적어지고 그에따라 얼굴 근육이 멍청하게 굳어버린 것을 보면
마냥 행복하고 만족스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요즘,
매 순간 불청객의 가면을 쓰고 나를 찾는 감정을 되도록이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분이 들면 웃고 미소지으면 그만이지만
사실 그 반대의 것이 들었을 때는 어떻게 제대로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현실과는 동 떨어진 내용이 대부분인 하루키의 단편집을 찾는 것 일까요?
하루키의 짧은 기담을 읽다보면 매번 느끼지만
제가 사로잡혀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어느새부터인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제 머릿 속에 남는 것은, 앞서 말한 것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래서 이거 진짜야? 아니야? 라는 생각 뿐이지요.
게다가 책이 가볍고 쪽이 얇아 정말 아무런 부담감없이
한 권의 책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독서에도 인간의 정복욕이 작용하는 걸까요?
책에서도 말하듯이
(이건 아마 저자 하루키가 책의 활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멍하니 있는 것과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의 차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의 저처럼 가만히 앉아 어딘가 한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 멍하니 있거나,
생각하는 것의 표면적 모양이겠지요.
책을 읽고 있는 제 모습 또한 그러겠지요?
제 속이 얼마나 시끄럽든, 혹은 평화롭든 책을 손에 쥐고 있을 때는 아무런 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 다름의 모양조차도 거의 비슷하게,
시선은 활자에, 허리는 조금 구부러진 모양으로, 목은 사선 방향을 향해 조금 떨어진 각도로
일정시간 유지되어 있는 것이겠습니다. 눈꺼풀은 가끔 깜빡여주며 각막이 마르는 것을 막아줍니다.
때때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거나 간직하고 싶은 그것을 만나면 손이 잠시동안 분주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말했다시피 잠시일 것입니다.
이렇게 쓸데없고 부질없는 말을 주저리 주저리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를 찾은 감정의 손님들을 모두 보내주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무사히 손님대접을 마칠 수 있었던 것에는
이 책 도쿄기담집의 도움이 혁혁했습니다.
현실을 바꿀 능력이, (슬프게도) 없는 저는
책을 읽습니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행하는 현실도피일 수도 있고
충전의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저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어느 쪽이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저에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어느 쪽이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저에게 이로운 것을 둘러보게 하는 지혜를 줍니다.
이번 감정의 골도 하루키가 있어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우울하고 멜랑꼴리해지면
하루키를 찾을 것입니다.
이상, 무라카미하루키의 도쿄기담집, 서평이었습니다.
긴 주절거림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