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의 <아처>를 읽고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가벼운 소재의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밖에는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있으니 바지는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었죠.
아무래도 발목근처가 축축한 것은 하루종일 찝찝한 기분만 남길 뿐이니까요.
화장은 평소보다 훨씬 연하고 가볍게 마무리했습니다.
귀걸이나 목걸이는 하지 않았고, 가방도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에코백으로 골랐습니다.
신발은, 집을 나서자마자 빗물이 발을 적실 터이니,
훤히 드러 날 색감이라고는 없는 나의 발가락이 조금은 부끄럽긴 하지만서도 당연스럽게 샌들을 신었습니다.
오늘은 조금은 가벼운 것들로 제 하루를 꾸며보려 합니다.
왠지 그러고 싶은 날입니다.
무거운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다보면 제 어깨의 짐 또한 가벼워질까해서요.
혹은
이미 쌓여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내 작은 어깨에
더 이상의 무게를 더하여주고 싶지 않은 본능일 수도 있겠네요.
무거운 지게를 지고 사는 일, 오늘 하루는 쉬고싶은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날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왠지 이렇게 저렇게 가르침을 주는 책을 피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이런 날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봐야 잔소리로 느껴질 확률이 굉장히 높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현실감이 짙은 책은 읽고 싶지 않아요.
냉소적인 태도라던지, 우울한 기분, 삶의 환멸을 느끼는 주인공, 정신병원에 갇힌 예술가, 무기력증, 결혼에 실패한 여자, 암에 걸린 주인공, 찐따같은 애가 나오지 않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무언가가 나와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나의 하루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책.
그런 책을 저는 오늘 읽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바로 도서관에 달려가 책을 쭈욱 훑기 시작했고,
긴 시간을 서성이던 저는 마침내 얇고 가벼운, 거기에 그림까지 곁들여진,
'오늘의 나'에게 딱 맞는 책을 찾았습니다.
바로
파울로 코엘료의 <아처>입니다.
정말 오랜만의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입니다.
연금술사 이후에 20년 만이라고 하는데,
오랜시간이 축척된 것에 비하면 책의 두께는 얇고 무게는 가볍습니다.
(이렇듯 오늘은 '가벼운' 것들만이 제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그런 날인가봅니다.)
이 책은 궁도를 수련하는 궁사를 통해
삶의 지혜가 무엇인지,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해야 하는지,
또 이를 통해 삶의 성찰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작가 코엘료가 평소에도 궁도를 수련해왔다고하네요.
금방 읽어 내려갈 줄 알았는데 활자도 얼마없는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만은 않았어요.
왜냐면 문장들은 가볍지 않았거든요.
문장들을 읽고,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나를 되돌아보게됩니다.
나를 되돌아보게되고,
내 하루를,
내 과거를,
내 인생을,
내 부모를,
내 배우자를,
내 환경을 되돌아보게되고.
나아가 그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는 우리를 발견하게 되죠.
그리고 이 순수한 감사함 이후에는 또한 순수한 의미의 자기고찰이 이어지게 됩니다.
페이지는 가벼이 넘겨지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한 권을 모두 읽게되는.
이래서 파울로 코엘료가 이토록 저명한 작가로 손 꼽히는 걸까요.
저는 살면서 단 한번도 궁도에 관심이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궁도가 너무나도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는 점,
궁도를 하는 자세로 삶의 여정을 살아나간다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화살을 놓아준 그 다음에는
웃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이 책을 통해 배웠습니다.
'한 번 떠나간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책의 말 처럼,
저는 이미 지나가버린 제 과거를 무슨 수로 붙잡을 수 있을까요.
후회를 한들, 자책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또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결코 알 수 없다.
화살 하나하나가 마음에 기억을 남기고, 그 기억들이 합쳐지면서 너는 점점 더 활을 잘 쏠 수 있게 될 것이다.' 라는 책의 말처럼
내가 살아온 인생 모든 요소들이
앞으로의 내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해주리라는 것을 저는 왜 모르고 있던 걸까요.
알았다면,
나의 마음의 소리에 그렇게까지 귀 기울이지 않았을텐데
알았다면,
남의 말에 그렇게까지 귀 기울이지 않았을텐데
알았다면,
나의 감정을 모든 것에 조금 덜 낭비했을텐데
말예요.
'마음 수련법'을 조금 더 가볍게 만나고 싶으신 분,
궁도는 몰라도 파울로 코엘료는 아시는 분,
두꺼운 책 말고 얇고 재미있는 책을 원하시는 분,
추천합니다.
파울로 코엘료 <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