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2년차 사장의 킹받는 순간들<1>

손님이 왕인 시절, 사장이 봉인 시절은 끝난지 오래 아니었던가?

by 니디


1.


캡모자를 쓰고 두꺼운 금 목걸이를 한 40대 후반 가량의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시냐는 나의 인사는 가볍게 무시한 다음

뭔 음식을 파는 가게냐고 한 숨에 물었다.


나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파는 가게라고 답했고,

볶음밥, 볶음면, 구이 음식 따위를 파는 가게라고 부연설명을 더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자는 자신의 귓바퀴를 한 두번 쓸어내리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뭐, 맛은 있어요?

네? 내가 되물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작은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1년 조금 넘은, 2년 차다.

맛은 있냐구요. 남자가 말했다. 약간 따지듯이 들렸던 것은 내가 사장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두 번째 맛있냐고 물은 남자는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2.


어른 4명과 아가1명 강아지 1마리가 가게에 왔다.

아가는 아기의자에 꼭 맞을 만큼 자랐다.

아이가 없기 때문에 아이가 몇 살정도 되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아무런 경험도, 배경지식도 없는 것이다.


아가는 식사 내내 소리를 질렀다. 음료가 담긴 컵을 떨어뜨리고 포크도 떨어뜨리고 앞접시도 떨어뜨렸다.

그리고 시계도 떨어뜨렸다. 시계는 어른 4명 중 한 명의 것이다. 나와 남편의 것은 아니니까.

아가의 부모는 떨어진 컵과, 포크와, 앞접시 중 앞접시만 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시계는 여전히 바닥에 놓여있다.


일행이 앉은 테이블은 홀 안쪽에 있어서 나의 시선이 닿을 수 없었지만, 나는 수시로 반찬과 물이 더 필요한 지 혹은 그 밖에 다른 것이 필요한지 물어야 했기에 테이블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가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고 그러면서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탁쳤다.

역시, 아이 키우는 것은 정말 힘들어보인다. 얼마나 힘들면 엄마는 아이를 제지하지도 않을까. 역시나 지친걸까. 라고 혼자 생각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갔다. 마지막 손님이었으니 밖은 제법 어둑해졌다.

행주와 소독제를 들고 테이블로 향했다. 드디어 퇴근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가벼워진다.


예상한대로 테이블은 어지럽다.

아까 떨어진 컵과 포크는 떨어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지만, 이번에는 시계가 없다.

그러다가 나는 '그것'을 보았다.


물컵에 따라진 물과 그 속에 담긴 면발. 일행은 볶음면을 주문했다.

면발은 짧은 단위로 끊어져 있었고, 물의 색은 탁했다. 공교롭게 갈색빛이었다. 똥물 같았다.

음식은 맵지 않기에 물에 면을 씻어줬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왜냐면 아이의 앞접시에는 먹다 남은 면발이 붙어있었으니까.

아이가 손바닥으로 테이블만 친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저로 컵을 딱딱딱. 물컵에 담긴 면발을 가만히 본다. 밥맛이 떨어지는 광경을, 나는 가만히 본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소리지르고 떨어뜨리고 테이블을 치는 건 아무렴 괜찮았다. 오히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어주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건 이해가 안간다. 화장실에서 똥 묻은 아이의 엉덩이를 씻는 것도 잘 안다. 잘 알겠다. 근데 컵 속에 가득담긴 면발똥물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음식으로 장난을 친 아이가 아니라 부모를 이해할 수 없다.


최소한 미안한 기색을 비춰야 하지는 않을까.

치워달라는 말도 아니고, 아이가 장난을 쳤으니 미안하다, 뭐 이런 뉘앙스 말이다.


점점 장사를 할 수록 노키즈존을 하는 사장의 마음을 알 것 같다.




3.


우리 식당은 반려견 동반식당이다.

그리고 우리 식당은 우리 부부 뿐만 아니라 보호소 출신 믹스견, 유기견의 피가 섞인 말라뮤트믹스, 길에서 죽어가던 길냥이도 함께 출퇴근을 하며 일을 한다.


중형 믹스견이 갈 식당이 세상에는 많이 없다. 반려견동반이 된다고 해도 다 소형견 혹은 품종견만 된단다. 왠 그지같은 문화인지 도무지 용납은 되지 않는다. 한 번은 중형견은 허용이 되지만 믹스견이라 허용이 안된다며 입장을 거부당한 적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반려동물 동반식당을 왜 열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된다.


우리 식당은 크기나 품종, 새, 고양이, 개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입장에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말이다. 어차피 내 새끼는 내가 제일 잘 케어하니까.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잘.


가끔 왜 식당에 개가 들어오냐며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나는 더 높은 톤의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전한다. '우리 식당은 반려견 동반식당 입니다.'


근데 며칠 전 이런 손님이 왔다. 만약 개를 싫어하는 손님이 이 때 있었다면 나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내가 유구무언이 될 상황들. 아니, 어쩌면 반려견동반식당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 수 있을까.


-

갈색푸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40대 쯤 되보이는 여자의 품에 안겨 식당에 왔다.

지금은 여름이니 날이 덥다. 그리고 제주는 무지하게 습해서 더 덥다.


개는 오죽하랴. 그래서 였을까. 이 견주는 사람이 먹는 물컵에 물을 가득 따라 자기 개에게 내밀었다. 그것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말이다. 갈색 푸들은 홀짝홀짝 잘도 마셨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강아지는 테이블에서 내려주시고 개 물그릇을 따로 주냐고 물었다. 견주는 갈색푸들을 다시 품에 꼬옥 안으며 테이블에서 개를 내렸고 물 그릇은 됐다고 했다. 개는 이미 물을 다 마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개가 물을 마시던 그 컵은 우리 부부 전용 물컵이 되었다. 이거, 고맙다고 해야하나.


-

그리고 또 이런 손님도 있었다.


이번에도 또한 갈색 푸들이다. 이번엔 수컷강아지.

홀에 있는 화분에 오줌을 싼다. 아, 마킹 수준의 몇 방울이 아니고 그냥 쉬를 쌌다.

견주는 가만히 앉아서 갈색 푸들을 본다. 마침 이때 손님이 없어 홀은 비어있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견주는 일찍이 리드줄을 개에게 분리했다.

개를 마음 껏 돌아다닐 수 있게 풀어주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때 주문을 받은 음료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리드줄에 잘 묶여 있던 개가 언제 자유롭게 됐는지 포착할 수 없었다.


우리 식당은 입장에는 아무런 제재는 없지만 규칙은 있다. 리드줄은 꼭 하고 있을 것, 아이가 마킹을 하면 견주가 치울 것, 만약 개가 너무 짖는다면 곤란하다는 점.


다시, 개가 오줌을 쌌다. 내가 아끼는 화분에. 우리 엄마가 사준 하얀색 화분에. 햐얀색 화분에 노란 자국이 드리웠다.

나는 당황을 하는 동시에 열이 받기 시작했다. 왜냐면 견주가 오줌을 닦을 생각을 아예 안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손님이 왕인시절, 사장이 봉인 시절은 지났다. 그래서 나는 물티슈와 키친타월을 한다발 뜯어 견주에게 주었다.

이걸로 닦으면 된다고 친절히 부연설명까지 해가며. 견주는 1초 망설이더니 휴지를 받아들어 화분을 대~충 닦았다.


다시 말하지만 오줌 몇 방울이 아니고 소변을 봤다. 대충 닦았다는 말은 화분 밑은 고사하고 그 주변도 아직 오줌이 흥건하지만 더이상 닦지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 오줌은 내가 닦았다. 화분을 들어 밑을 닦았고 또 화분을 옮겨 전체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손님이 나가고 난 후에는 락스를 뿌려 대걸레질을 했다.


나는 강아지에게 화나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 화가난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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