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로 했다

1.

by 니디

"엄마 공황장애래. 지금 황내과 다녀오는 길이야.

더 큰 병원 가라고 해서 이틀 뒤에 대학병원 예약해 뒀어.


글쎄 숨이 안 쉬어지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거야.

갑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 있지...

연가내고 집에 지금 막 도착했어. 좀 자려고.."


-


지난 1월 3일 부로 엄마는 회사에서 갑자기 발령 통보를 받았다.

엄마는 단 이틀 만에 10년 넘게 몸 담던 사무실을 떠나

집에서 15km 떨어진 곳으로 출근을 시작해야만 했다.


엄마는 반기지는 않지만 사회생활이 다 그런 거 아니겠냐며

힘 빠지는 소리로 탄식했다.


-


나랑 둘이 살 때도 뭐든 다 해내던 엄마라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싶었다.


엄마 본인은 회사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지만

연봉 4000만 원을 포기하기는 아깝다며 힘을 내보겠다고 했는데.


물론 엄마가 출근 첫날부터 나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호소했지만

난 언제나 그렇듯 울 엄마가 잘 적응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엔 의심도 없었고 의문도 없었다.

엄마는 수면제에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좀처럼 잘 안되네... 참 힘들어.. 엄마가 할 수 있을까...?"


-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회사 때문에

공황장애까지 얻을 줄은 정말 몰랐다.


아니, 사실 엄마는 공황장애가 아니었다.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우울증이었다.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엄마는 나에게 전했다.

"사지에 다 깁스를 하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에도 단단한 깁스가 되어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라더라..

엄마.. 많이 아프대..아주 많이.."


-


우선 솔직히 난 아주 크게 놀랐지만

동시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저 자비없는 사실과 현실을 갑자기 마주한다는 것에

준비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뭐, 이런 일에 무슨 준비까지 필요하랴.


-


엄마는 평소에도 매사에

식욕이 없고

의욕이 없고

살고자하는 욕구 또한 낮았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맨날 엄마 죽는 꿈을 꾼것일까?


-


엄마는 회사 때문에 우울증이 걸린 게 아니었다.

회사라는 단순하고 명료한 원인 말고

세월 속에 숨어들어가 제 스스로 몸을 불리고 키워

결국 엄마를 시들게한 원인이 있다. 이유가 분명히 있다.


-


근데 지금 당장은

그 이유가 너무 복잡하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심연 속에 빠져있는지라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가 없다.

다만 짐작할 뿐.


그동안 엄마가 나에게 한 슬픈 이야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면...

최소 30년 전부터 시작됐으리라 생각된다.

아니면 40년 전부터 일 수도 있다.


-


안 되겠다.

엄마가 느낀다는 극도의 공포, 내가 무찔러 줘야겠다.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가 그것도 못하겠어?


-


난 상상속으로 내 마음 속을 단단한 철통으로 감쌌다.

냄새나는 오물에도 젖지 않고

독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독극물에도 끄떡 없는 그런 깡통!


난 나의 하나뿐인 나의 엄마를 다시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


근데 어떻게?

내 주변엔 우울증 걸린 사람이

엄마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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