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죽을 것 처럼 살라구요?

흔한 자기계발서의 피력

by 니디

솔직히 말하면 '내일 죽을 것 처럼 살아라'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지금 당장부터 어떻게 살아야할 지 모르겠다. 말의 핵심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현재를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여기저기 음식 부스러기가 게걸스럽게 묻어 있는 이 빈접시들(내가 치워야 할, 나는 남편과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을 팽개치고 무작정 개들을 끌고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하러 바다로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아니라기 보다는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 구체적인 이유를 낱낱이 말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나의 행동(살펴보자면 남편과 나, 함께 식당을 운영하기로 한 약속 따위)이 만들어낸 나의 현재는 그러한, 나의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본능을 따르는 것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 결국 '내일 죽을 것 처럼 살아라'는 말은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비현실적인 발상인 걸까? 근데 진짜로 내가 내일 죽게 된다면? 미래의 나는 정말이지 후회를 하며 짜디 짠 후회의 눈물을 주저 없이 흘릴 것만 같다. 그렇다. 정말로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수도 없이 되새긴 이 질문.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반야심경에서는 모든 만물과 감정과 사물과 그냥 이 지구에 있는 모든 것들,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전체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두들기고 있는 이 키보드도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눈 앞에 보이는 나의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도 역시나 우연의 일치로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 일 뿐, 사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내일 죽을 나를 위해 도대체 어떻게 지금을 살아야 하는 걸까? 그 답, 지극히 주관적인 이 답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글을 읽으며 나의 마음이 요동쳤다는 것과 나의 두 눈이 눈물로 가득 찼다는 것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요 며칠 내가 찾던 답임에 틀림이 없어 보였다.


구글이 눈 깜빡할 사이 나에게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를 쓴 작가이자 과학기자이자 예술가인 룰루 밀러는 방송계의 퓰리처 상인 피버디 상을 수상했다. 그는 그의 책에서(p.71-75)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띄어쓰기 한 톨도 변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활기 넘치는 사람이다. 수전증이 있는 생화학자로, 모든 생명에, 심장박동과 번개에, 심지어 생각 자체에도 동력을 공급하는, 전기를 나르는 입자인 이온을 연구한다. 아버지는 안전띠도 매지 않고, 발신인 주소도 쓰지 않고, 수영이 금지된 곳에서 수영을 한다.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이제 소매와는 끝이라고 선언했다. 소매 때문에 시험관을 넘어뜨린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곧바로 가위를 들고 옷장으로 달려갔고, 이후 몇 년 동안 ‘학계의 해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차림으로 출근했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은 아버지의 모든 걸음, 베어 무는 모든 것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아버지는 수년 동안 오토바이를 몰고,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시고,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게걸스러운 자신의 쾌락주의에 한계를 설정하는 자기만의 도덕률을 세우고 또 지키고자 자신에게 단 하나의 거짓말만을 허용했다. 그 도덕률은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울고 말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 또한 나 자신을 '우주 안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에 아무런 의의가 없으며 나아가 그의 아버지처럼 '나 좋을 대로' 살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엄청난 양의 맥주도 마시고 싶고,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마다 바다에 뛰어들어 엄마의 품을 느끼고 싶다. 그가 가진 '게걸스러운 쾌락주의'가 무척이나 빛이난다. 나에게는.


여기에서 그에게 더욱 감동을 받은 이유를 말하자면, 딸에게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그가 또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해서 그는 자신이 세워 놓은 이 도덕률을 지키고자 이렇게 행동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반세기 동안 거의 매일 아침 어머니에게 커피를 만들어주었고, 자기 학생들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들은 명절 때 우리 집에 식사하러 오고, 때로는 우리 집에서 살기도 했다. 우리 집 식탁에는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새긴 수천 개의 작은 숫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우리 세 자매에게 수학의 논리를 이해 시키려 노력하며 보낸 무수한 밤들의 물리적 기록이다.




나는 지금부터 거의 나의 평생을 삶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에는 '1,000일 동안의 연습을 '단'이라고 하고, 10,000일 동안의 연습을 '연'이라고 한다'고 씌여있다. 아마도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룰루 밀러의 아버지처럼 나의 현재를 대하는 연습을 시작할 것이다. 그게 '단'이 되고 '연'이 될 때까지.


이미 나의 연습은 시작됐다. 손님들이 남긴 흔적을 치우다가 갑자기 아무렇게나 떠오른 생각을 이렇게 한 줄 한줄 정리해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음식 부스러기가 게걸스럽게 묻어있는'빈 접시를 팽개치고 노트북 앞에 앉았기 때문이다. 룰루 밀러의 아버지의 행동에 빗대어 보자면... '물에 들어가는 게 가능할 때마다 큰 배로 풍덩 수면을 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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