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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Jun 06. 2019

레벨 업

참을성이 부족하지. 인내심이 부족해. 끈덕지질 못해. 끝까지 무언갈 해 내는 걸 본 적이 없어. 엉덩이가 가벼워. 노력을 하질 않아.

어릴 때부터 너무나 많이 들어온 말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친척 및 친구로부터,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 과외 선생님으로부터. 그럼에도 어느 정도 꾸역꾸역 살아와 있고.  

무언가 오래 꾸준하게 오래해 본 적이 없다.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몇 번 타보다가 잘 되질 않자, 쉽게 나는 '난 자전거도 없으니깐 뭐' 생각해 버리지. 피아노도 오래 가지 못했다. 체르니 100번에 입문하자마자, '피아노는 누나가 잘 치니깐 뭐' 생각해 버리지.


무엇 하나 오래 끝을 보지 못하던 나. 제대로 무언가의 엔딩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동/청소년기에도. 성인이 된 지금도. 대학 때 학생회도 겨우 그저그저 참여하던 정도. 운동권이었다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겨우 그저 그런 정도. 대학원에 들어가서 하던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다지만, 정형적인 기준이 교수 임용이라 한다면 결국 끝을 보지 못했지. 물론 외부적인 영향이 무척 큰 과정인 데다가, 내겐 너무 큰 외부적인 영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뭐 어쨌든. 그러다 고맙게도 굴러들어온 취업도 어찌 보면 몇 년간은 안정적일 수 있는 일자리였다지만 겨우 두달 반을 채웠다. 그러고는 나는 죽고 싶었지. 나는 왜 이럴까. 겨우겨우 나를 자위하며 변명하며 버텨 보았고.


오늘 포켓몬고를 만렙 40렙을 찍었다. 더이상 게임이 지속되지 않는 완전한 엔딩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이상 레벨업을 위한 게이지가 내게는 없다. 어찌 보면 처음으로 맞아보는 엔딩. 같이 게임을 하는 사람들에게 분에 넘치는 격려와 축하들을 들었고.


포켓몬을 하는 내게 많은 질문들을 한다. 유행 지나고 철 지난 게임을 왜 아직도 하냐고.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어. 이보다 더 오래된 게임을 하는 이들에게는 왜 아직도 그 게임을 하느냐는 질문들을 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뭐 어쨌든 답을 해보자면.


기본적으로 걷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그러면서 주변의 지리를 관찰하는 것을 즐기고, 아이고 넘넘 귀엽고, 이벤트들도 계속계속 새로 생겨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알고 지내면서 함께 보스몬들을 잡아 나가고 그런데 나는 상대적으로 낯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유들을 댈 수 있다. 그렇지만서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까닭은, "능력"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게임이었다. 하면 할수록 그것이 바로 성과가 되는. 꾸역꾸역이가 잘잘이가 되는 그런 게임. 그리고 나는 꾸역꾸역이에서 결국 잘잘이가 되었고.


35, 36, 37, 렙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런 경험을 해 보고 싶었다. 끈덕져 보는 경험. 꾸준함이 단 "40"이라는 수치로 기호화되고 말지언정, 꾸준함의 귀결을 보는 경험. 처음으로 무언가의 엔딩을 보는 경험. 이것은 증강현실이라 현실의 엔딩과는 무관할지언정, 증강현실도 현실이니까 그 엔딩을 나와 유관하게 만드는 경험.


오늘 포켓몬고 만렙 40렙을 찍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것은 ending이 아니라 anding이다. 아마 내가 쉽게 포기해 버린 일들도 그 ending은 anding이었을 것이다. 그 anding까지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아서 ending을 경험하고픈 의욕이 없었던 것으로 해 두자. 왜냐하면 나는 더이상 끈덕지지 못한 사람도 아니고,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며, 끝까지 무언갈 해내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며, 무엇보다, 나는...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우씨...쓰다 보니 눈물날 것 같다. 40렙 찍은 날 180603. 분명 기억될 날이야. 나는 그럭저럭이든 꽤이든, 어떤 수식어의 도움을 받든... 어쨌든 무언가 열심히 해 보는 사람이다.


ending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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