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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Mar 23. 2020

시간, 강사

1. 시간 - 세 시간



강의한 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았다. 물론 노동 시간에 강의 준비에 소요되는, 과제 및 시험 채점에 소요되는, 성적 산출에 소요되는 시간은 고려되지 않는다. 통제와 확인이 불가능한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강의일에 공휴일이 겹치면 그만큼의 시간은 급여 계산에서 배제된다. 통제와 확인의 영역에서 노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강의를 할 때는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가 가장 고민이었다. 두 시간 강의면 두 시간을, 세 시간 강의면 세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전달하고 오는 것이 좋은 수업인 줄 알았다. 한 학기에 교재 한 권을 오롯이 소화하는 것, 그것이 수업의 목표여야 하는 줄 알았다.


피곤했다. 흥이 나질 않았다. 학생들은 졸았다. 과제들은 부실했다. 그러던 중 선배 한 분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데 그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자기도 처음 강의할 때 그랬노라고. 그런데 지금은 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비울지"를 고민한다고. 채워야 하는 강박을 버리고 비움의 공간을 두었을 때 질문과 응답이, 대화와 토론이, 사유와 이해가 가능하다고. 어떤 오르막을 만들지가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어떻게 배치할지를 고민한다고.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나의 교수법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신 학생들의 질문을 대해야 한다는 용기가 필요했고, 나의 모름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용기가 필요했고, 그리고 나의 모름 역시 부끄러운 것이 아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했다. 그러자 그때서야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다. PPT와 교재만을 바라보던 얼굴이 나의 얼굴과 대면하기 시작했다. 눈을 마주쳤고, 목소리를 교차했다. 용기와 믿음은 짜릿한 감정이었고, 대면과 대화는 유쾌한 경험이었다.


나는 나의 세 시간들을 사랑했다. 확인과 통제의 영역밖에서의 노동의 가치가 급여로 환산되지 않는 것에 대한 억울함도 이러한 즐거움과 유쾌함들로 참아낼 만했다.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다.




2. 시간 - 8년



8년을 했다. 2010년에 처음 울산대 강의로 시작을 했고, 이후, 가톨릭대, 경희대, 명지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아주대, 이화여대, 인하대, 한국방송통신대, 한신대, 홍익대(가나다 순)에서 한 학기 이상 강의를 맡아 했다. 처음으로 대학 강의를 한 것이 서른이었고 어느새 서른 일곱이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 사람과 만났다가 이 사람과 헤어졌고 저 사람과 만났다가 저 사람과 헤어졌다. 이 사람과 친했다가 이 사람과 멀어졌고, 저 사람과 멀었다가 저 사람과 친해졌다. 신림에 살았다가 목동에 살았고, 목동에 살았다가 지금은 화곡동에 산다. 진보신당 당원이었다가 녹색당에 잠깐 몸을 담았고, 지금은 또 노동당 당원이다. 구월이라는 가족도 생겼고 시인으로 등단을 하기도 했다. 8년을 복기하려 해도 시간 순서가 헷갈릴 것 같다.


그 8년의 시간 동안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강사였다는 점이다. 8년 동안 변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이었다. 다양한 일들을 했다. 프로젝트의 연구원이기도 했고, 기관지의 인터뷰어를 하기도 했다. 정당의 대의원이기도 했고,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딜 가든 직업을 소개해야 할 때, "대학에서 시간제 강의 노동을 하고 있는"으로 시작했다. 그런 8년이었다.


8년 전에는 8년 후를 모른다. 즉 내일부터의 나의 모습은 8년 전에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일 9월 1일부로 나는 더이상 학부 강의가 없다. 나는 내일부터 코리아텍의 대학자율역량강화지원사업단의 비교과교육 분야의 커리큘럼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실무자가 된다. 이제 나는 더이상 "대학에서 시간제 강의 노동을 하고 있는"이라고 소개를 할 수가 없다. 나의 8년은 이제 끝났다.




3. 시간 - 時間



시간이라는 한자어를 뜯어보면 그 뜻은 두 시(時)의 사이(間)를 말하는 것 같다. 사이의 밖이 필요한 출발점이 있었고 도착점이 있는 그리고 그 두 시점 사이를 말하는.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은 모두들 "시간 강사"는 어떤 "사이"처럼 이야기했다. "강사", 그것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시간"으로서 "시간 강사"를 이야기했다. 대학원생과 교수의 사이. 대학원생에서 교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있는 어떤 경유지인 것처럼. during이 아닌 through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명제처럼 말하기도 했고 당위명제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through 이후에 오게 될 빛은 장밋빛일 테니까 그 through 동안의 쓴맛은 잘 참아내라고.


그러나 나에게 어쩌면 두 시(時) 사이는 명확한 연결점이 형성되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through가 될 수 없고 through 이후가 장밋빛인 것도 아니다. 나에게 그 시간은 온전한 during이다. 나에게 그 8년은 경유와 감내의 시간이 될 수 없다. 나는 실패했기 때문이고 역설적으로 그 경유에서 탈락하고 탈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이 시작될 때 생각했던 미래에 다다르지 못했다. 구조 내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나는 내가 많이 부족했다고, 나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다고, "미생"의 대사처럼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것",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라고 생각해야, 믿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 그 8년, 그 through가 될 수 없었던 during의 마침표를, 지금 울면서 이 글로 찍는다. 나의 時間은 끝났다고.




4. 시간 - 9 to 6, 혹은 6 to 9



그래서 나는 내일부터, 9시부터 5시까지 천안의 코리아텍에서 근무한다. 아침 7시 20분, 교대역에서 있는 셔틀을 타야 하고, 그러려면 6시 10분 정도에 집에서 나서야 하고, 그러려면 5시 30분에는 기상해야 한다.


5시까지 근무라지만 교대역으로 올라오는 셔틀이 6시 10분에 있으므로 사실상 9 to 6의 근무다, 7시 40분 정도에 교대역에 떨어져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들어오면 9시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사실상 집밖의 시간들은 6 to 9이 된다.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출퇴근과 근무시간이 짧고 자유롭고 유동적인 강사 생활을 8년 동안 하다가, 주5일 9 to 6로 사무실에 매이게 되는 생활이 될텐데 걱정이 좀 된다는 질문, 혹은 질문 아닌 우려. 그래서 나도 그것이 나의 질문이고 걱정이라고 솔직히 답했다. 군대 이후 그래 본 적이 없다고.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일도, 출퇴근도, 두렵고 무섭고 걱정이다. 거주는 또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온다. 어쨌든 내일은 첫 출근이고 나는 출근 첫 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쨌든 내일 첫 출근이고 그래서 다섯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자야 한다. 가끔 영원히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은 그 어느때보다도 말똥말똥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자야 한다. 열한시니까.


나는 "시간 강사"였고 이제는 아니다.
어떤 학기가 끝나고 한 학생이 보내주었던, 나의 강의에 대한 평 캡처 사진이다.
내 "시간 강사" 시절의 첫 출발 즈음이다.
나는 제법 좋았던, 제법 잘했던, 제법 열심히 했던
"시간 강사"였고, 이제는 아니다.





-201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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