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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Mar 23. 2020

잃어버린 답변

계명대 폭력 사태 이야기가 나온 탓에, "너는 이런 적 없지? 성인 되고 나서 누구에게 맞은 적."이라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몇 초를 망설이다 결국 "다음에 이야기할게."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는 일회적이지 않다. 어떤 특수성을 묻는 질문에 "야, 당연히 그런 적 없지."라고 부정을 하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답변을 잃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질문 역시 일회적이지 않으므로, 이 답변을 하지 못하는 서사를 지속해야 한다.


대면하고 있는 이에게 피해 서사를 말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 말하지 않는다면 상대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고민해야 하는 것, 말한다면 피해 서사를 얼마만큼 말할지 가늠하는 것, 이런 것들은 계기적으로 연속되는 고통이다.


말한 뒤, 내가 필요로 하지 않는 만큼 위로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 내가 원치 않는 방향의 위로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 위로의 양과 질을 내가 결정해 줄 수 없는 것 역시, 대면하고 있는 이의 선의로 인해 나는 다시 피해를 입기도 한다.


대화를 예상할 수 없기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는 그 장면성을 다시 복기해야만 한다. 대화를 많이 피하게 되고, 피해는 결국, 나의 언어들을, 나의 관계들을 제한한다.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테지. 시간은 치유도 해 주지만, 시간은 누적도 해 준다.



-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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