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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Mar 23. 2020

최선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 않기

이규리 시인의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가 다시 읽고 싶어 찾아 보는데 집에 없다. 버렸을 리는 없고 집에는 없으니 필시 누군가를 빌려준 것이다. 대상이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문제다. 언제, 누구를, 무슨 연유로 빌려 주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빌린 것도 내가 빌려준 것도 돌아서면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게으른 내가 가장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있다면, 까먹는 일이다. 잊는 일이다.  

그 책을 빌려준 이가 페이스북 친구라서 이 글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 시집은 보라색으로 참 예쁘다. 책장에 꽂아 두어야 하지만 안 돌려주셔도 된다. 새로 사면 된다. 무의적으로 당신께 드려 버린 선물이다. 당신께 빌려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사과다. 최선은 그런 것이다. 대신 나중에 저한테도 시집 한 권 선물해 주세요. 아니, 내가 아닌 누구한테라도. 그게 더 최선이다.


최악은 무엇일까. 다시 찾아 보니 우리집 어딘가에 그 책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있을 만한 곳은 대충 다 훑어 보았다. 최선을 다해 찾아 본 것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할 일도 아니다. 그럴 맘도 없고. 그리고 왠지 글을 쓰다 보니 누군가에게 빌려준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빌려준 것 같은 기억은 나는데 그게 "누군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기억을 해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 2015. 0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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