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에 간이로 차려진 고인의 분향소에 다녀왔다. 영정 대신, 고인의 친구들이 함께 사진들로 기억을 환기해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고인의 한 장면을 기억해내 영정을 대신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란 하릴없이 내 강의를 듣는 모습일 뿐이지만, 항상 앞쪽에서 맑은 얼굴로 강의를 들었던 이라 장면을 만들어 내는 것은 쉬웠다.
향을 불붙여 분향하려 했는데 비가 오는 와중이라 쉽지 않았다. 그래도 피워져 있는 향이 없기에 애써 불붙여 향로에 꽂았다.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다. 허리를 두 번 숙이고 얼굴을 들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의례의 힘이구나. 절차의 힘이구나. 의례와 절차를 굳이 하게끔 만드는 관계와 기억의 힘이구나. 고인과 나는 고작 사개월 정도 강의실에서 서 있던 사람과 앉아 있던 사람에 불과하지만 절차와 의례가 그 기억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구나.
포스트잇에 몇 마디를 적고 돌아서는데 고인의 친구이자 역시 고인과 함께 내 수업을 수강한 학생이 인사를 했다. 역시 얼굴이 기억이 잘 나는 학생이다. 이 영상에도 나오고. 몇 달 전에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내게 먼저 인사를 해 주었던 학생이다. 어떤 작은 접점들은 어떤 일들로 인해 더 강한 접착력을 지니기도 한다. 연락처를 나누고 차후 상황을 공유해 주길 부탁했다. 나도 함께할 수 있는 것은 하겠다고.
우리는 이제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있는 이에게 잘 지내라고는 말하지만 잘 지내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스스로라도 만들어 내는 것. 여기 세상에서 고인이라는 접점으로 만들어진 관계들이 반짝이고 있는 것. 우리는 그를 확인할 수 없지만 그는 우리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 기억하는 것. 관계하는 것. 행동하는 것.
내가 잘 모르는 그대여, 잘 지내시라.
이름과 얼굴을 오래 새기고 있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wL46pVWkBpc
- 2017. 0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