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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Mar 26. 2020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

조동일, "우리말 오용의 범인"에 부쳐

조동일 쌤이 오늘자 경향에 산이가 출연하는 공익광고에 대한 비판글을 올렸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122057035&code=990304&fbclid=IwAR1czkMpBWlXbDbHtN-_Rb4CJVdVDsMFYstxngYu6nTzZvXBAjcvjLsXoQw)


주된 요지는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는 공익광고의 카피인 "한글,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가 되려 잘못된 말이라는 것. 핵심 어절, "한글", "쓸수록", "내가" 이 셋 모두 오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을 바르게 쓰면 존중받습니다."로 정정해야 한다는.


"한글"에 대한 지적은 대체로 동의한다. 작년 한글날 즈음에도 페북에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사실 "한글"이란 용어를 "우리말"의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글"이란 용어 자체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한국어", "우리말"의 개념을 포괄하는 용어였다는 것. 어원적으로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도 "한글"을 언어적 범위를 지칭하는 것에 대해 "무식", "몰상식"의 소산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다. 그러나 공식적 차원에서는 더 개념이 확실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고 그러므로 "한글" 대신 "우리말"로 정정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은 없다.  


그 다음부터는 좀 과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데, "쓸수록"에 대한 지적부터 보자. "쓰-"에 결합된 어미인 "-ㄹ수록"의 경우는 후행절의 정도성과 관련된 연결어미이고 따라서 후행절에 "더", "더욱" 등과 같은 부사와 호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사가 없으므로 "쓰면"으로 정정해야 한다는 것.


동의하기 힘들다. "더"나 "더욱"이 있으면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법도 하지만 "-ㄹ수록" 안에 후행절의 정도성 강화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읽을수록 재밌네."라는 문장은 "더"나 "더욱"이 없어서 부자연스러운가? "-ㄹ수록"이란 어미에 의해 이미 "재밌다"의 정도성이 강해짐을 우리는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 물론 해당 문장 "바르게 쓸수록 내가 존중받습니다."에서도 "더"나 "더욱"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더 자연스러울 수 있겠다. 그렇다면 후행절에 "더"나 "더욱"을 넣는 방향으로 정정해야 할 것이지 왜 생뚱맞게 선행절 어미를 고치는 방향이어야 하는지? "쓰면"으로 고치게 되면 "-ㄹ수록"이 원래 가지고 했던 정도성 강화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이 카피가 의도했던 바는 사선(↗)이었는데 어미를 고쳐 버리는 순간 도약(Γ)으로 의미가 바뀌어 버린다. 문장의 의미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교정은 개선이라 볼 수 없다. 개악이다.


다음은 "내가"의 문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이상하므로 "나는"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우리 모두는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므로 굳이 1인칭이 없어도 되니, 빼면 더욱 좋다는 것. 동의하기 힘들다. 일단 "-가"와 "-는"의 문제에서 타자와의 대조의 의미를 더 강하게 드러내는 조사는 오히려 "-는" 쪽이다. "나는"이라고 했을 때 오히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의미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 오히려 "내가"를 사용하는 경우는 주체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즉 언어를 바르게 사용할수록 "언어"라는 물(物)이 아닌 "나"라는 주체(主體)가 존중받는다는 것. 타자와의 대조의 의미보다는 이런 대조의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말씀대로 우리 모두가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은 명징하다. 너무나도 보편타당한 격률로서의 명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체성을 강조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인칭을 사용하는 것에는 분명한 효과가 있으며, 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나는"보다 "내가"가 더욱 적절해 보인다.


오히려 이 카피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조동일 쌤이 지적하지 않은 부분, "바르게"이다. 언어가 바르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독스레 시시콜콜 미시적인 부분까지 간섭하고 있는 어문규범에 부합하는 언어가 "바른" 언어인가. 이 광고에서 들고 있는 예로는 "득템"과 같은 신조어들, "ㅋㅋㅋㅋ"와 같은 초성 어휘들, 나아가 "바리깡", "헤어샵"과 같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는("바리캉, 헤어숍"이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는 표기이다.) 것들이 있다. 이들은 바르지 않은가? 왜 바르지 않은가? 새로 생겨난 말이기 때문인가?(득템) 표기의 간이성을 추구했기 때문인가?(ㅋㅋㅋㅋ) 표기법을 좀 어겼기 때문인가?(바리깡) 언제까지 바르고 바르지 않은 언어생활로 기의가 아닌 기표를 이야기할 것인가? 우리말을 바로 쓰고 알맞게 쓰는 것, 좋은 문장이 되는 것을 언제까지 기표 중심적인 언어규범의 틀에서 이야기할 것인가? 십 몇 년을 국어학을 전공한 나로서도 무결하게 준수하지 못하는 언어규범을 어디까지 강요할 것인가? 우리말을 바르게 쓰려면 그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규범을 다 알아야만 하는가? 심지어는 외래어 표기법조차도?


언어 사용 개선의 방향이 필요하다면 제발 좀 그만 기표에 집착하고 기의로 방향을 바꾸자. 우리 주위를 둘러싼 혐오와 차별의 언어들, 폭력과 폭력을 재생산하는 언어들, 언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사회적 의미에 집중하자. "바르다"의 방향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방향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만약에 "바름"의 방향이란 것이 있다면, 오히려 언어의 의미를 관찰하는 것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에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 2017.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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