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창섭 Mar 27. 2020

문장만 놓고 이야기하면 문장교육인가

대학 졸업을 위해 필수적으로 배정된 글쓰기 수업들에서는, 문장쓰기라는 이름으로 올바른(?) 문장을 쓰게끔 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의 글쓰기 수업도 예외는 아닌데, 적절치 않은 문장과 이를 바로잡은 올바른(?) 문장들의 대응을 보다 보면 좀 기가 차고 과도한 바로잡음(?)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예제 중 하나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많은 도시를 다녀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이 문장은 적절치 않은 문장이므로 바로잡으라는 문제가 있다.
일단 이 문장이 적절치 않은 까닭은 다들 아시다시피 중의적인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의미는 둘로 해석된다.


1) "사람들"이 "다니다"의 주어로 해석되는 경우.
2) "사람들"이 "많다"의 주어로 해석되는 경우.


중의적인 문장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고 이를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시되는 모범답안은 아래의 둘이다.


1) 사람들이, 많은 도시를 다녀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2) 인구가 많은 도시를 다녀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


중의성은 해소되었지만 모범답안들이 더 좋은 문장들이라 할 수 있는가? 가독성을 해치는 쉼표가 추가되었고, 2)번 문장은 바로잡기 전의 문장보다 좋은 문장이라고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어떤 문장의 중의성은 그 한 문장만으로는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문장은 그 문장만으로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다. 대개의 중의성들은 선행하는 문장과 후행하는 문장과의 관계 속에서 대체로 해결된다. 저 예제의 문장도 어떠한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면 전혀 중의적이지 않은 문장으로 읽히는 것이다. "문장쓰기"라는 이름으로 딱 한 문장만 따로 떼어 놓고 이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다 보니, 오히려 과도한 바로잡음(?)이 발생하게 된다.


아래의 경우도 보자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건대 나의 지금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문장의 문제는 무엇일까?


............................주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범답안은
"내가 어린 나이에 할머니의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보건대 할머니는 나의 지금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다.............


후행하는 문장에서 "할머니는"을 추가한 것은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이나, 앞 문장에서 "내가"를 반드시 추가할 필요가 있을까? 더 정확한 문장일지는 모르겠으나, 문장의 맛은 확 줄어든다. 술어 중심의 언어인 한국어에서는 사실 많은 문장에서 주어가 생략되고, 생략된다 할지라도 선후 관계 속에서 쉽게 파악된다. 필수 성분이라는 까닭으로 "주어"를 반드시 명기해 보여야 한다는 것은 문장이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는 전제를 버린 탓이다.


현재 많은 대학의 글쓰기 수업에서는 어떤 문장이 맥락 속에서 "좋은 문장"이 되게끔 가르치고 있지 않다. 어떤 문장이 그 한 문장으로서 "틀린 문장"이 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은 한 문장만 쓰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문장과 문장을 이어나가며 쓰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필요한 문장쓰기의 교수 방법론은 무엇일까? 적어도 지금과 같이 한 문장만 덩그라니 제시하고 그 문장의 잘잘못을 따지라고 하는 교수법은 아닐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여자들이 말을 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