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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Dec 22. 2018

얼굴에 그려지는 지도

... 
일흔 일곱이나 살았으니 이 할미 얼굴에 이렇게 꽃이 많이 폈지. 곧 갈 때가 됐다는 저쪽의 신호지. 내 과거의 신상명세서가 돋아나는 거라. 내 나이쯤 되면 자연히 눈치를 채게 되지. 
... 
모양이 다양하지? 미소가 물고 있는 보조개 자리엔 크레센도 기호가 찍혔지. 독설을 퍼부으며 실룩거린 입시울쪽으로 칙칙한 색이 곡괭이 모양으로 앉고, 뽐을 내며 내밀던 아랫입술 쪽으로는 척버섯이 피지. 
... 
양 볼에 정작으로 피어야 할 것은 화려한 홍조꽃이라. 연애할 때 볼연지 찍었던 자리에는 연등 버섯이 나지. 까닭없이 따귀를 맞았던 곳에는 벌건 자국버섯이, 지금도 양초로 글씨를 써서 촛불에 쬐이면 선명히 보이지. 
... 
데 요즘 점이다 버섯이다 해서 빼고 지우느라 야단이지? 
... 
맘대로 해, 그런다고 숨겨질까. 그게 다 제 미래의 약도인 줄 모르고 하느 짓이지. 돌아가야 할 주소를 잃어버리려고 부러 그러는지. 
... 



- '버섯꽃', 이고운(외숙모) 수필집 "백번째 그리움" 중에서. 







내 옛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엄마의 뱃집보다 더 이전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오랫동안 사람들은 얼굴에 지도를 그린다. 
80년을 산 사람은 80년 동안, 8년을 산 사람은 8년 동안. 
매순간 우리는 돌아가기가 싫어, 돌아가기가 무서워 발버둥을 치지만, 
나도 모르게 그어지는 내 삶은 짧고 굵은 선들. 
그 움푹하게 파인 선에 씨를 박고, 
땀과 눈물을 거름삼아 피어나는 꽃들. 


지금 나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 
어떤 지도를 그려 놓았을까. 
어떤 꽃들이 피어 있을까. 

그걸 알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만난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은 
그를 대신해 내가 그의 공간 속의 꽃밭을 확인해 주기 위해서, 
지금 나의 지도는, 나의 꽃밭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묻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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