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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창섭 Dec 23. 2018

고통의 교집합이 합집합으로

- 2012, 5월에 쓴

퇴근길에 홍대 정문의 투쟁천막에 잠시 들러 응원을 해 드리고 왔다. 정관장 홍삼 음료수를 사드리고 싶었지만 4만원 가까이 하길래 찌질하게 움찔하게 복분자 음료를 들고 갔다. 사실 나에게 그녀들은 청소아주머니라기보다는 어떤 이웃에 가깝다.


찌질했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는 한 때 목욕탕 청소일을 하셨다. 그리고 그래서 돈 번은 아마 온전히 나 하나의 등록금은 무슨, 한달 용돈 정도였을 것이다. 뭐 그리 우리 집이 어렵다고 그딴 일까지 하시나 난 엄마를 힐난하면서 정작 나는 내 용돈을 위해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손님들이 떠난 목욕탕에서 알몸으로 타일들을 닦으신 돈이 나의 술값과 담뱃값으로 나갔다.


제대하고 롯데마트에서 주차요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키가 남들보다 조금 더 크다는 이유로 나는 주차요원 중에서도 수신호 요원이었고 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고 더 화려한 수신호를 하며 몇 만원 더 화려한 월급을 받았다. 나는 내가 롯데마트에서 일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일한 장소가 롯데마트였지, 나는 롯데마트 소속이 아니었다. 나 역시 용역업체와 계약이 되어 있었고, 그 용역업체에서 돈을 받았다. 물론 9년이 지난 지금 그 용역업체의 이름이 기억날 리는 없다. 다만 그때 그 계약서에 몇 할을 어디에 지불한다느니 그런 말이 적혀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때는 물론 계약서 같은 것을 읽을 줄도 몰랐고 비정규직, 용역 같은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다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은 주차 알바를 구하기 전 공장일, 택배일 등 여러 알바 자리를 알아보았는데, 그 모든 곳에서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일을 하려면 무슨 동에 있는 무슨 무슨 회사 사무실에 가서 계약을 하고 와야 한다고만 했다. 내가 주차 알바를 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알아본 알바들 중, 해당 사무실이 우리 집이랑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의 목욕탕일과 나의 주차요원일 사이의 교집합이 될는지 혹은 그 둘의 합집합이 될는지 그곳에 그분들이 존재한다. 고통의 집합 속의 동일한 원소가 된다. 퇴직 후 갈 곳 몰라 서성대다 막노동일을 좀 하셨던 아버지도 우리 가족 중 가장 늙은 원소가 되고, 백화점에서 09시부터 21시까지 서서 일을 하지만, 백화점 영업시간에 따라 10시부터 20시까지, 게다가 점심 저녁시간, 두 시간 빼고 수당을 받았던 우리 누나도 원소로서 등장한다.


투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대단한 일도 머나먼 일도 아니다. 당신도 그 원소이기 때문이다.당신은 아니라면 당신의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당신의 동생은 그 원소이기 때문이다. 혹은 지금의 당신은 그렇지 않다면 과거의 당신이 그 원소였을 수도 있고, 그리고 아마 미래의 당신 역시 그 원소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용역사가 아닌 "노동자"와 계약하라!
탄압과 "찌질한 복수극"을 그만두라!






"공감이란 타인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가능하다. 고통을 받았다는 점, 두 사람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점이 바로 타인과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이것은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이해해야 가능하다. 사실 우리는 저마다 가진 고통이 다를지라도 너도 고통받았고 나도 고통받았다는 고통에의 참여라는 의미에서 서로 공감하며 자기연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자크 디네센은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내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 이 사람이 동료다. 동료란 내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동료란 또한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슬픔에 공감하는 동료가 있을 때 내 삶이 비루하더라도 나는 삶이 견딜 만하다고 느껴진다. 동료가 공유하는 것은 바로 언어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는 언어가 같을 때 우리는 이 친구에게 내가 공감되고 있다고 알 수 있다."
엄기호,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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