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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도굴꾼

by 윤동규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온다. 나름대로 내 안에선 이게 진리다. 진리라는 말이 내 안에선 뒤에 붙을 말은 아니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다 이거야. 한때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빌빌거리던 시절에도 꾸준히 카페에 나가 작업했다. 커피값도 부담스러울 때엔 남산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침대와 의식적으로 멀어지려는 노력, 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인풋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꼭 고전 문학이나 영화, 음악이나 시가 아니라도 일상 어디에도 영감은 있다.


영감은 늘 유용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흐리지만은 않는다. 뮤직비디오 준비할 때면 늘 기가 막힌 다큐멘터리 소재들이 떠오르고. 예능 콘텐츠 기획할때는 12부작 SF 시나리오가, 영화 한번 찍어볼까 하면 숏폼 콘텐츠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내일 시험이니 오늘 우겨넣을거면 벼락치기가 공부의 정석이겠지. 심지어 이건 공부나 암기의 영역도 아니다. 작가는 늘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때마다 꺼내다 쓰는 보부상에 가깝다.


나는 평소에 영감을 얻고 싶지 않아. 난 일할때는 일하고 놀때는 놀고 싶어. 일상과 일은 구분되어야 해, 라는 사람은 작가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그렇게 칼같이 구분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로 먹고 산다면 그건 신의 재능이다. 작가는 늘 소재를 갈구하고 새로움을 찾는다. 일상에서 찾고 싶어서 찾는게 아니다. 일 하기 직전에 찾아선 쓰레기같은 아이디어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서 소재를 처음 떠올린다고? 그럼 당신은 셋 중 하나다. 첫번째, 쓰레기 같은걸 만드는 사람. 두번째 셰익스피어의 환생(물론 자신이 셰익스피어의 환생이라 믿는 쓰레기도 있지만 그건 제외하고). 그리고 세번째는 흉내쟁이다.


레퍼런스가 나쁘지 않다. 말이 되는 소린가, 레퍼런스가 나쁘다는건 영감을 주는 모든 작업물들이 해롭다는 뜻인데. 어떤 레퍼런스는 "이대로 만들면 되겠군"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그런 레퍼런스는 작업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며 마치 내가 이런 작업을 만들것만 같은 고양감까지 심어준다. 이런 절묘한 레퍼런스를 찾아낸다면, 우리는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1. <어떻게 하면 레퍼런스대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 2. <어떻게 하면 레퍼런스와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 여기서 1번을 고르는 사람을 나는 흉내쟁이라 부른다.


인풋은 경계가 없다. 버스 창 밖 풍경이나 카페에서 흐르는 음악, 도서관 계단, 창 밖의 사람들이나 개 짖는 소리도 훌륭한 영감이 될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온다. 그리고 반대로, 아웃풋이 있어야 인풋이 된다. 8과 1/2이든 제 7의 봉인이든 시민 케인이든, 그렇구나 하고 치워버리면 그게 뭔 인풋이고 영감인가. 레퍼런스는 체화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걸 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급하게 쳐먹은 레퍼런스는 체하기 마련이다. 굳이 쳐먹는다는 표현을 쓴 걸 보면 알겠지만, 나는 그들을 작가라 부를 수 없다.


흉내쟁이의 유일한 능력은, 흉내낼 것들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말하자면 레퍼런스 서치지만, 그게 훌륭한 레퍼런스라는 검증은 어디에도 없다(놀랍게도, 세상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작업들은 훌륭하다). 어떤 레퍼런스는 레퍼런스의 레퍼런스의 레퍼런스를 보고 따라한 작업일 뿐이다. 흉내쟁이의 흉내는 심지어 흉내마저도 흉내의 흉내인 경우가 과반수다.


흉내쟁이는 이것이 정말 나의 작업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누군가 레퍼런스를 잘 찾는것도 능력이라고 헛바람이라도 불어 넣었나보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안다. 그들이 추구하는 레퍼런스의 가장 큰 핵심은 "얼마나 사람들이 잘 모르냐"이다(한국 레퍼런스는 애초에 찾아보지도 않는다). 어쩌다 너무 유명한 레퍼런스를 흉내내면 들킬까봐 조마조마하지만, 그렇다고 레퍼런스 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는 슬픈 직업이다.


흉내쟁이는 일상과 일이 명확히 구분된다. 해야 하는 작업이 있어야 그에 맞는 레퍼런스를 찾기 때문이다. <어디에 쓸진 모르지만 좋은 작업물>은 그들에겐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일상의 새로운 경험이나 영감이 피로하게 느껴지고, 어떤 감동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건 마음의 움직임이 아니니까. 에이 설마 흉내내놓고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양심이 있지.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애초에 흉내쟁이는 작가라 부를 수 없다. 흉내쟁이가 작가면 트레이싱도 화가인가? 모작도 예술인가? 아니, 위작도 존중받아야 하는가? 도라에몽도 재밌지만, 동짜몽도 재밌단 얘기가 가능한 얘긴가? 태권 V가 자랑스러울 수 있는가? 기술적인 훌륭함은 뽐낼 수 있다. 중국의 어떤 건프라는 반다이 오리지널보다 퀄리티가 높다. 어떤 믹스테이프는 원곡보다 훌륭한 랩이 올라간다. 원곡보다 쫄깃한 커버곡도 무수히 많다. 박수는 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는 건프라 디자이너다", "나는 최고의 비트메이커다" "이건 내 곡이다"라고 말하는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기술을 뽐내고 싶으면 기술자가 되어라. 작가의 이름을 달고 싶으면 자기의 이야기를 해라. 작가의 이름을 달고 흉내만 내고 싶다면, 최소한 부끄러운지는 알아라. 왜 당당한거야.


나의 비판적 사고의 9할 9푼은 나를 포함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흉내쟁이에 한해서는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군요. 만약 내 작업이 어떠어떠한 작업을 흉내 낸 것 처럼 보인다구요? 저는 늘 레퍼런스에선 보여주지 못한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더 뛰어나지 못할거면 더 형편없게라도 만들어요. 똑같이 잘 만들기보단 다르게 못 만드는게 짜릿합니다. 재해석이 느껴지지 않고, 복사 붙여넣기처럼 보인다면. 그건 그냥 내 실력이 병신같은 것을 욕하세요.


이 글을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뻔뻔하게 돈을 받고 일하는 수많은 도굴꾼에게 바칩니다. 아 도굴꾼 좋네. 흉내쟁이보다 입에 잘 붙는다. 이제 와서 바꾸긴 좀 그렇지만, 앞으로는 도굴꾼이라 부르겠습니다. 도굴꾼 여러분, 모작은 부끄러운게 아닙니다. 어떤 작가는 좋아하는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했다고 합니다. 이게 내 작품이 되었으면 해서요. 저도 같은 의미로 애니홀 대본을 따라 쓴 적이 있습니다. 손이 아파서 키보드로 쳤지만 어쨌든, 레퍼런스를 따라하는 것은 훌륭한 성장 과정입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너네가 그걸로 돈만 받지 않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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