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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믿습니다

by 윤동규

딱히 연말은 아니지만, 올해의 내가 작년의 나보다 뭐가 더 잘나건진 모르겠다. 그땐 그래도 조금이나마 건강하기라도 했을까.


이번 달의 나는 저번 달의 나보다 조금 부지런할까. 막연하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눈으로 보이는 증거가 없다.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


그러다 저번 주의 나와 이번 주의 나를 비교하게 되면서. 조금은 알게 된다. 굳이 어제의 나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지난 한 주와 이번 한 주를 비교하면 뭐가 더 근사했고 뭐가 더 한심했는지 알 수 있다.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은 말만 번지르르하지, 숨 막히는 삶 그 자체였지만. 한 주 단위는 버틸만하다. 한 달 보다 막연하지도, 하루보다 타이트하지도 않다. 나는 주간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자신에 차 뉴스레터를 시작한지 벌써 3주차. 콘텐츠 데이터를 기록한지는 4주차다. 그러고보면 콘텐츠 데이터 기록 양식도 주 단위고, 업로드 일정도 주 단위다. 하다 못해 웹툰도 요일 업로드고 튀르키예즈도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업로드다. 생각보다 특별히 나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죄다 주 단위로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왜요? 하루는 짧고 한달은 기니까요?


뭐 그 이유를 찾으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니까. 결국 주 단위 일정의 효율에 대해서 몸으로 부딪치며 연구하는 도중, <무르기>가 시작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난 웹툰 작가로 치면 세이브 원고 없이 그 주 그 주 만들어대는 사람인데, 유난히도 바쁜 주. 혹은 회식이나 다른 일정이 있는 주는 작업이 한없이 미뤄진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회식으로 인한 숙취로(맥주 두잔과 하이볼 두잔이 전부였음에도 불과하고) 계획된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났다. 평일 일정엔 팟캐스트 편집이 들어가 있었는데, 사운드 노이즈를 해결하는데만 3일을 쓰고 결국 아직도 해결을 못하고 있다. 볼륨을 크게 들으면 안되는 팟캐스트라니. 너무 비참하잖아. <무르기>는 평일에서 주말로, 주말에서 다음 주로. 다음 주에서 그 다음 주로, 한도 없이 넘어간다. 평일 하루에 두시간. 주말엔 네시간만 투자하겠단 계획이 모조리 엉크러진다. 이봐요 하루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당신은 사운드 노이즈 때문에 원고지 50매가 채워지지 않은 적 없나요?


이래나 저래나 결국은 숫자 안에 갇혀야 한다. 매일 하나의 콘텐츠를 업로드 한다는 것도, 숫자로 따져보면 간단하다. 7중 1당 1을 사용하고, 1을 위해 7중 5는 2, 2는 4를 소모한다. 5중 2를 소모하지 못했을 시 2의 4를 초과한 수 만큼 더한다. 이때 철수의 기분을 구하시오. 개같다 이거에요. 쓰는 나조차도 뭔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풀어서 이야기해보자. 일주일에 매일 하나의 콘텐츠를 올리는데, 콘텐츠 하나를 위해 평일에 두시간. 주말엔 네시간을 사용하여 제작한다. 하지만 평일에 두시간을 쓰지 못했을 시, 주말에 못 쓴 시간만큼 더한다는 뜻이다. 이래서 수학이 재밌었지와 이래서 수학이 싫었지가 공존하는 신기한 기분이다.


그리하여, 1. 숫자 놀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2. 이럴수록 더욱 더 숫자에 갇혀야 한다, 라는 의견이 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숫자 놀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건 곧 하루에 하나. 하루에 두시간, 일주일에 일곱개 모든 숫자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이미 해봤던 루틴이잖아. 내가 끌리면 작업하고 하고 싶은게 있으면 앉아있고, 딱히 없으면 안하고. 한달에 한번 6개월에 한번 올리고. 이미 거기서 실패를 겪었다면, 이젠 숫자를 믿어보는게 어떨까? 어차피 숫자가 대본 써주지도 숫자가 촬영 해주지도 않는다. 그냥 숫자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얼마나 좋냐, 조회수 계산해주지 몇명이나 봤는지 그 중 몇명이나 몇초대에 이탈했는지 일당 평균 조회수가 몇이며 업로드 날짜부터 몇일이 지났는지. 구글 시트에 쓰면 다 나온다. 데이터를 믿기로 했으면 데이터에 좀 놀아나보자. 내가 평생 종교는 없었지만, 그래도 숫자는 믿어보자.


작업의 진척도와 성질과 상관 없이 <하루 중 회사 일을 제외하고 집중해서 앉아있는 시간>을 두 시간으로 설정했다. 두 시간. 오늘 올라간 대중문화 비평이 딱 두시간만에 만들었다. 툴앤툴즈는 조금 더 빠르게 만들거고, 팟캐스트 같은 것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쓰겠지. 이탈리아 로드무비도 마찬가지고. 그런 계산 하지 말자 이거야. 그냥 하루에 두시간. 주말에도 하루에 두시간. 단 평일에 못 쓴 두시간이 있으면 주말로 미뤄서, 최대 6시간. 평일에 모든 일정이 끝났으면 괜히 세이브 만든다고 하지 말고, 주말에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평일에 더욱 더 열심히 하고. 숫자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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