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도에 보수적이다. "아무도 안 하던 형식"은 "하면 안되는 이유"를 동반하기 때문인데, 비전공자의 눈엔 그저 새롭기만 하면 합격인가 보다. 덕분에 가슴팍에 슈퍼패스 명찰 단 쓰레기같은 졸작들이 넘쳐난다. 아 졸업 작품 말구요. 졸업 작품이라 해도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예컨대 이런 식이다. "모든 장면을 핸드헬드로 찍는다"라고 쳐보자. 핸드헬드는 꼭 역동적인 장면이 아니라도, 인물의 불안함 감정을 표현하기에 아주 좋은 기법이다. 그런데 그게 뭐 병원 홍보영상이야. 저희 다섯명의 원장들만 믿고 맡기십시오! 하고 있어, 그런건 잘못됐다 이거다. 새로움이 메세지 위에 서려는 순간 작업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왜>가 빠져있다. <새로움>이 <왜>를 대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게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문맥과 상관 없이 새로움만 때려 박으면 신선한 작품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버드맨>이나 <로프>가 그냥 관객들에게 박수 받고 싶어서 원테이크처럼 찍었을까. 오 신선한데? 오 어떻게 만든거야, 같은 반응을 얻고 싶으면 서커스나 마술 쪽을 추천한다.
참다 참다 이런 맥락으로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반대하면, 나를 무슨 타성에 젖어 관습에 찌든 공무원 취급하며 새로움의 가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런 새로운 시도 사이에 황금 같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이다", "기존에 하던 대로만 하면 남들과 똑같은 것만 나온다". 아니 새로운게 싫다는게 아니라, 이런걸 안 하는 이유가 있는데 왜 밀고 나가냐구요. 여기까지 갔으면, 단박에 내 입을 다물게 하는 결정적 한마디가 나올 차례다. "그럼 감독님은 더 좋은 아이디어 있어요?".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