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릴 일이 있었는데. 기껏 다 쓰고 얹어보니 글자 수 초과라는 경고가 떴다. 내가 뭐 얼마나 썼길래 그러는지 억울해서 스크리브너를 켜보니 3000자가 훌쩍 넘어갔다. 참고로 인스타그램 글자 수 제한은 2200자다. 800개나 쳐내야 하네.
생각해보면 늘 압축을 힘들어했다. 함축적이고 밀도 높은건 도무지 내 편이 아니다. 그게 글이 됐든, 영상이 됐든, 그림이 됐든 줄곧 그렇게 살아왔다. 석고 소묘로 대학을 준비했던 시절에도 초반 30분은 내가 우사인 볼트요 두개의 심장이라 자부했다. 물론 4시간이 지나도 30분때랑 큰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빨랐죠.
이걸 단점으로 여기면 한도 끝도 없이 단점이다. 밀도가 낮다 정도로 끝날 이야기가 아닌 집중력 부족, 끈기 부족, ADHD에 텅 빈 사람, 가벼운 사람 취급 받기 딱 좋다. 특히나 돈을 받으며 영상을 찍기 시작했을 때에 가장 단점이 드러났는데. 완성도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딱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그거 편집하는데도 30분 걸렸어요.
하지만 이 치열한 사회 속 나름의 생존 전략을 꾀하게 되는데. 단점은 무시하거나 덮어둔다고 사라지진 않는다. 목구멍에 가시처럼 늘 신경이 쓰이고 제거하고 싶은 대상이다. 하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치환한다면 굳이 제거하거나 숨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당당하게 내세우고 내 정체성으로 만들어보는건 어떨까? 나는 산만하고 완성도가 낮기 때문에 빠릅니다. 너희가 밀도를 채울 동안 새로운 그림을 그리죠.
그렇다면 압축률이 낮은 대신 만들어지는게 빠르고, 가벼운 작업을 어떻게 활용하는게 좋을까? 여기서 어떻게 보다 어디에 가 더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절묘한 플랫폼 하나를 말하는게 아니라. 여기도 저기도, 어디에도 활용할 수 있는 원 소스 멀티 유즈가 가능하다. 밀도가 좀 낮으면 어떤가, 어차피 사람들 다 대충 휴대폰으로 슥슥 넘기면서 보는데. 내가 무슨 안톤 체호프냐.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결국 삼류 찌라시랑 다를게 없다. 삼류 찌라시랑 같다 해서 억울한건 또 아니지만, 일류는 못되어도 이류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밀도나 완성도를 대신할만한 한 스푼이 들어가야 한다. 얼핏 다작의 능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 처럼 보이지만, 저는 남기남이 되고 싶진 않은걸요. 질이 떨어진다고 해서 양을 대안으로 삼는건 멍청한 짓이다. 아니 애초에, 질이 떨어지면 양은 당연히 오르기 마련이다. 한 쪽을 버렸으니 다른 쪽을 취하는건데 그걸 자랑하고 다니면 안되죠.
결국 가장 중요한건 스타일입니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각자 자신의 음악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만, 그 중 보컬이 환상적이고 연주가 경이로우며 믹싱 마스터링이 소름 돋는 앨범이 얼마나 됩니까? 오히려 그런거 좀 부족해도 앨범이. 곡이. 뮤지션의 스타일에 더 많은 애정을 주지 않나요? 세상에는 가장 보통의 존재나 수렴과 발산만 있는게 아닙니다. 그런 앨범만 있으면 숨 막혀 죽을거라구요.
그럼 이만 결론을 내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건 2200자가 넘을진 모르겠네요. 저는 퀄리티를 높이는걸 힘들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적당한 퀄리티까진 남들보다 쉽고 빠르게 도달해요. 그래서 적당한 퀄리티의 많은 작업을 넓게 펼칠 수 있습니다. 그 작업들 하나 하나에 저의 스타일을 얹힐 수 있다면, 더이상 저의 단점은 존재하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조금 양심에 찔리니까, 이렇게 글로 증거를 남깁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