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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할당량

by 윤동규

산문을 쓰기 좋은 시간은 언제일까. 회사 점심시간을 편집 시간으로 뺏긴 이후, 도저히 자연스럽게 산문을 쓸 시간이 안 나온다. 물론 일찍 출근하고 다른 사람들 출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있지만, 일단은 아침엔 그렇게 글이 잘 써지지도 않고. 나름 돈 받고 일하는건데 업무 시간에 쓰면 쓰나. 이 이유를 두번째에 말하는게 이미 글렀다 싶지만 어쨌든,


마냥 부정적인건 아닌게. 브런치나 블로그에 납품하던 산문들이 대본의 형태로 나름 영상으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산문에게 생명이 있고 본인의 거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면, 영상이 될래 글이 될래? 란 질문에 어떤 선택을 할까.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깐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는 곳에 써주세요 라고 말하진 않을까.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인가. 까치에요, 패를 좆같이 주거든. 어떤 사람은 어떤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쉽게 말해 뭐가 더 돈이 되냐. 틱톡은 나름 좋아요만 대박 나면 수십만원은 안겨준다. 브런치는 날고 기어 봤자 겨우 겨우 책 한권 지원해주는데, 애초에 이런 글을 책으로 만들어 준다는 상상 자체가 너무 반인류적이다. 영상의 압도적인 승리다.


그렇다면 비물질의 풍요로움은? 나는 아무래도 괜찮으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한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게 나를 성장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단 순간을 종종 맞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종의 성장을 거친다. “당신의 글에 1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따위의 알람이나 보내고 앉아있는 브런치나. “1주일에 글 하나씩 올려서 6개월 채우면 무려 해외여행 상품권과 맥북의 응모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확률은 비공개입니다!”같은 하나마나한 병신같은 이벤트를 하는 블로그보다. 차라리 틱톡 인스타 유튜브가 생산성 있지 않겠어요? 최소한 거기엔 보는 사람이 있긴 하니까.


그러니 산문에 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즐거워서 하는건데. 정해진 할당량 채우려 아득바득 애쓰지 말자. 어차피 대본 쓰면서 평생 쓸 글 실컷 쓰고 있다. 지금처럼 4K로 찍은 영상들 쓰레기 같은 컴퓨터에서 돌리려면 25% 화질로 프록시 돌려야 할 때. 글 쓰는거 말고는 도무지 할 수 있는게 없을 때. 이런 때에나 산문을 쓰자. 혹시라도 아쉬워 하지 말아요. 님들이 재밌게 읽었다 안읽었다 티를 안내서 쓰기 싫어진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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