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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구려서 좋아!

by 윤동규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좆도 상관 없이, 사람은 그냥 오래된 것에 향수를 느낀다. 그것도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물건. 바이닐 유행이 그렇다. 바이닐이 2022년 8월 출시된 최신 기술이라면 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바이닐은 특유의 맛이 있어, 디지털 음원으로는 느낄 수 없는 어쩌구 저쩌구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차이마저 스펙이 아닌 질감에서 오는 멋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이젠 바이닐은 너무 멀어졌다 느낀 일부 힙스터(요즘엔 힙스터란 말이 왜 이렇게 멸칭 같이 느껴지는진 모르겠다)들이 바이닐의 대체제로 카세트 테이프를 소비하기 시작한다. 바이닐은 그나마 풍류라도 있지, 카세트 테이프는 음원에 비해서 뭐 하나 나은 구석이 없다. 하지만 이미 그건 중요하지 않다. 멜론 벅스 지니에서 나오는 음악과 질감이 다르다는 것. 그 질감이 더 좋아서가 포인트가 아니다.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실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이 바이닐과 음원의 차이에 비해선 밸런스 망겜 수준으로 대체할 수 없는 차이를 선보이지만, 일단 사고 장농에 쳐박고 나면 추가 비용이 없는 바이닐에 비해 필름은 셔터 순간 순간이 돈이다. 원래도 그렇게 싸다고 할 수 없었는데, 요즘엔 정말 살 떨리게 비싸서 필름 한 롤 보다 캘리포니아 롤 세트가 저렴한 꼴이다. 억지로 라임 맞춰서 미안.


그러다보니 카세트 테이프, 워크맨의 부흥 느낌으로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DSLR이나 미러리스, 하물며 스마트폰이랑 비교해도 민망할 정도의 해상력을 가지지만,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가리 총 맞은 것 처럼 "더 구려서 더 좋아!"를 외치고 다닌다. 하기야 우리가 사진을 끽해야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대형 인화나 전시 할 일이 있겠나. 너무나도 납득이 가고 자연스러운 변화다. 스트리밍 시대의 바이닐과 카세트 테이프. 스마트폰 시대의 필름 카메라와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


내가 딱히 대중문화 연구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대중문화에 몸을 담고 있는 입장으로서. 이러한 시대의 흐름이 흥미로운건 사실이다. 일찍이 바이닐도 카세트 테이프도, 심지어 CDP도 포기하고 유튜브 뮤직을 활용하고. RF 카메라 목측식 카메라 6mm 캠코더 등등을 장식장에 진열해 놓는게 전부인 나지만. 이번엔 특별히 시대의 흐름을 체감해보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사보려고 한다. 아니 진짜 그 이유래도. 이게 다 뼈와 살이 되는 자료야 자료. 공부 한다는데 왜. 책 값은 아끼면 안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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