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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규 대중성 6계명

by 윤동규

자극적이고 재밌는건 늘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다. “야 이딴것만 만들지 말고 좀 재밌는걸 좀 만들어봐”, 라는 소리를 들어도 “앗 그렇구나! 몰랐어 고마워!”라고 답할 수 없다.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번 입 아프게 설명하느니 그래 그래야겠다 하고 넘어가는데, 그래도 좀 억울하니까 한번 글로 풀어보자. 나는 왜 대중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가.


첫번째. 대중적인 성향이 아니다. 물론 일과 취향을 명확히 분리해서 좋아하지도 않는 작업을 만드는 사람도 많지만, 그것도 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일만 들어오면 사일런트 힐이든 아기상어든 뚝딱 만들어내는 감독들을 존경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냥 평생 하고 싶은거 만들다가 뒤질 운명인데, 하고 싶지 않은걸 만들라니. 그건 마치 짖을 때 마다 전기 충격이 오는 기계를 채운 개와 같다. 니들은 좋겠지. 난 지옥이야.


두번째. 작업 효율의 문제. 대중의 취향을 맞추는 과정이 빠지고 내 취향만 신경쓰면 된다는건 말도 안되게 큰 차이다. 매일 점심마다 회사 사람들 먹을 음식을 주문한다고 치자. 누구는 비건이고, 누구는 해산물 싫어하고. 아 쟤는 어제 면 먹어서 오늘은 밥 먹고 싶댔는데. 그나마 이건 최소한의 정보라도 있지, 대중은 정답이 없다. 유추할 뿐이다. 어차피 정답도 없는거 어떻게든 맞춰 보려 낑낑댈 시간에, 그냥 내 하고 싶은거 하는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내가 먹고 싶은 음식만 시키면 되잖아.


세번째. 개성. 이왕 앞에 음식으로 예를 들었으니, 조금 더 이어가보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식당이 얼마나 매력적일까? 순간 이케아 푸드코트가 생각났다. 썩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 이케아 미트볼 먹고 싶어”하고 아른거릴 맛도 아니다. 대중적이란 뜻은, 결국 무탈함을 노릴 수 밖에 없다. 100명의 관중이 70점을 주는 작업을 추구하게 된다. 하지만 난 늘 90명의 0점과 10명의 100점이 가치가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네번째. 퀄리티. 대중적인 작업은 퀄리티가 높을 수 없다. 높기 힘들다 정도로 애둘러 말하는게 아니라 단정 짓는 이유는, 내가 애정이 동력인 사람이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목표이거나 “큰 돈을 벌고 싶어”가 목표인 사람은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하고 싶은 작업을 만들고 싶어”가 목표라면, 그 동기는 애정밖에 남지 않는다. 애정으로 작업의 퀄리티를 끌어 올리고, 애정으로 디테일을 끌어 올린다. 그냥 대중적인 작업이 목적이라면, 아마 그냥 휴대폰으로 찍지 않을까?


다섯번째. 대중성이다. 대중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 이유로 대중성이라니. 뭔 개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이건 일종의 믿음의 문제다. 마틴 스콜세지 옹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그냥 창작자들을 애둘러 위로하는 허울 뿐인 망상인지, 만고 세상의 진리인지는 계산의 영역을 넘어선다. 이건 믿음의 문제다. 내 개인적인 작업들이 세상에 통할지, 외면당할지는 믿는 수 밖에 없다. 이 믿음이 옳음을 증명하는데엔 한 평생이 걸리지만, 그걸 부정하는건 1초면 가능하다. “야 이딴것만 만들지 말고 좀 재밌는걸 좀 만들어봐”.


그러니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고, 내 성향을 믿고. 효율적으로, 개성 있게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며 대중적으로도 성공할 계획이다. 가끔 우연히 취향과 대중적인 성과가 일치할 때가 있다. 그럼 아무리 나라도 흔들린다. ‘이런걸 더 만들면 더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땐 내가 원하는 작업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을거야’. 웃기게도, 그런 생각에서 빠져나오게 해주는건 무수히 많은 댓글들이다.


아마도 여섯번째. 대중을 위해 작업하기엔, 대중은 너무 무례하다. 한 콘텐츠가 흥하면 댓글도 수천개가 달린다. 그러면 자연히 이런 작업을 좋아하는 인간들의 수준을 파악하게 된다. 이게 내가 원하는 대중인가? 이렇게 품위 없고 해로운 인간들을 위해 작업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 그게 뭐야. 너무 보잘 것 없는 삶이잖아.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업이 우연히 사랑과 관심을 받는거야 막을 순 없지만. 사랑과 관심을 받길 원해서 만드는 작업은 반드시 볼품없다. 이걸 잊는 댓가는 혹독하게 치루게 될 것이다. 기억하자. 윤동규 대중성 6계명. 육개장은 작은 사발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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