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우월감을 느끼는 게 한심하다. 사실 애초에 다독하는 사람이 그걸로 우월감을 느끼는 걸 본 적도 없다. 오직 어쩌다 최근에 책 읽는 재미에 빠져봤는데, 이걸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애새끼만이 그러한다. 너무 멍청해서 동정심이 갈 정도다. 책은 결국 글을 담는 도구일 뿐이고, 글 역시 생각을 담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여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혀야 해”라고 말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은 비행기를 많이 타야 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뭔 소용이냐. 대한 항공 스튜어디스 될 거야?
이왕 권할 거면. 책이든 만화든 라디오든 음악이든 TV 프로그램이든 영화든 유튜브든, 그 매체 자체가 아닌 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추천해라 이거야. 이번에 김중혁 신작이 괜찮다던가, 넷플릭스 칸예 다큐는 2부까지 좋았다던가. 아이브 신곡이 마음을 녹인다던가. 유튜브 채널 수집의 수집이 죽여준다거나 어쨌든.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거야 뭔 문제가 있겠나. 작품과 그에 대한 호불호는 비틀즈의 음악성을 욕하더라도 그의 자유다. 하지만 매체는 다르다, 매체는.
책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TV 채널의 한심함을 이야기하는 건. <수요예술무대>보다 <마왕 일기>가 우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꼭 매체의 단위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순수 문학이 판타지 소설보다 우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드래곤 라자>같은 작품은 바닥에 깔아놓고 시작한다는 얘기인가? 세상에 순수 문학의 수준이 그렇게 높을 줄이야. 아이돌 음악은 구리다고 할 거면 이번 뉴진스 사운드 질감이나 듣고 와봐라. 뭐? 만화책? 거 말 한번 잘 꺼냈다. 문학 영화 음악 다 통틀어서 <H2>만 한 울림은 주는 작품이 어디 있기나 있냐? 게임? 영웅전설이라고 들어는 봤니?
더 말해봐야 주둥이만 고역이니까 여기서 글을 줄이겠다. 글을 줄인댔지 그들의 병신 같은 우월감을 향한 내 분노까지 줄이는 건 아니니까, 혹여나 아직도 매체나 장르에 우월감을 느끼며 다른 장르를 깔보는 인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일단 두 손을 번쩍 들어보자. 그걸로 왕복 40회씩 싸다구를 날려보는 건 어떨까? 매체든 장르든, 어디에나 망작이 있으면 명작 역시 존재한다. 정 무언가를 까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면, 장르가 아닌 작품을 까도록 하자. 은평구 불광동의 윤동규를 까라 이말이야. 불광동도 까지 말고 은평구는 더더욱 까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