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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Sep 07. 2022

지구의 탄생

2022년 9월 6일. 태풍 힌남노는 다행히 은평구까지는 영향을 행사하진 않았고, 준수 아빠와 연하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직접 데리러 와주셨다. 내가 아에 운전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차를 살 형편이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미소와 함께 지구를 만나러 가는 날은 아빠 엄마가 함께 해주셨으면 했다. 트렁크에는 사위 편하게 자라고 바리바리 싸 놓으신 이불이 잔뜩 있었다. 오전 8시가 조금 넘어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미소는 새벽 4시가 다 되어서 잠들었지만,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참새처럼 짹짹거렸다. 기운이 넘치는지 아님 수술을 앞둔 긴장을 덮으려는 건진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기운이 넘치는 쪽을 응원할 뿐이다. 순식간에 병원에 도착했고, 보호자 1인을 제외하곤 출입이 안 되는 것은 우리 모두 다 알지만. 우리 가족은 당당하게 수술실로 향했다. 


아빠가 내가 양 손에 든 짐을 들어주시려 하자 "괜찮아요 가벼운거에요"라는 말에 "가벼운거면 내가 들면 되지"라고 답하신게 기억에 남는다. 아빠가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려 하자, 미소가 엘레베이터 타고 가자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적어보니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기억 나는 일들은 기억 나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적어봤다.


미소가 먼저 들어가고, 수술 준비를 한다. 보호자인 나는 몇개의 서류와 PCR 검사를 마치고, 아빠 엄마와 함께 로비에서 대기했다. 아빠는 혹시나 수술실 CCTV인줄 알고 TV를 켰지만, 수백개의 IPTV 채널이 우릴 반겼다. 아빠는 JTBC 골프 채널 더 게임:타이거 우즈2를 시청하셨다. 나는 아직도 아무 생각이 없다.


아빠 엄마와 인사를 나누고, 수술 대기실로 들어갔다. 미소가 핑크색 꽃돼지 수술복을 입고 누워있다. 수술 날 아침에 앞머리에 롤을 말아 볼륨감을 준 미소가 괜히 웃겼다. 생각해보니 아까 짐 중에 고데기도 있었던 것 같다. 미소의 팔에는 주사 바늘이 깊숙히 박혀 있었고, 수액이 한방울씩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 뒤에 안원장님이 오셔서 인사를 나누고, 앞 수술이 일찍 끝나 생각보다 일찍 수술에 들어가게 됐다. 


수술실은 커녕, 수술실 앞까지도 못 가고 대기실에서 미소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렸다. 카메라를 챙기는데 미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연분만은 옆에 내가 있어줄 수 있는데. 왜 미소가 그렇게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 했는지 너무 뒤늦게 알았다. 미소는 혼자서 너무 무서웠다. 옆에 있어주는 것도 할 수 없다는게 조금 절망적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건 기록이다, 나는 기록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지구가 태어나자마자, 피와 양수로 뒤덮힌 지구를 잘 찍어야지! 캠코더와 미러리스와 고프로까지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소의 울음 소리에,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의 옆에 있고 싶었다.


놀랄 정도로 수술은 일찍 끝났다. 남편분 이제 준비할게요. 벌써요? 10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부랴부랴 카메라를 챙겨 수술실 앞으로 향했다. 수술실 안을 어떻게든 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선 느닷없이 인터뷰를 진행했고, 나는 왜 내 카메라로 내 인터뷰를 찍는지 조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응했다. 얼른 끝내고 미소에게 가고 싶었다. 오죽하면 그렇게 싫어하던 손가락 하트도 그냥 빨리 끝내길 바라는 마음에 해드렸다. 이후 아이를 처음 안을 때의 유의사항을 듣는 도중에 (미소의 것이 아닌)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수술을 동시에 여러개 하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저 안에 미소가 있고. 그럼 지구의 울음소리일건데, 울음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마치 유튜브에 신생아 울음소리를 검색해서 스피커로 튼 것 같았다. 선생님이 "방금 울음 소리 들으셨어요?"물어보셨다. 그제서야 지구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자각했고, 지구는 한번 더 지구가 떠나갈 듯 울음을 내질렀다. 영문도 모를 눈물이 쏟아졌다. 대신 캠코더를 들고 있던 선생님이 신나서 내 눈물을 찍었다. 결혼식도 지구가 태어날때도 난 늘 울보였다.


지구는 보령 머드축제를 막 끝내고 온 것 같았다. 양수와 피로 범벅이 된 채 입 안의 양수를 토해냈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확인했다. 미소는 혹시나 아이가 바뀔 수 있으니, 꼭 몸에 점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아이가 눈코입이 제대로 달려 있는지도 보지 못했다. 오직 쿠키 반죽 같은 묘한 촉감과 아기가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은 울음소리만 선명했다. 아이를 안아보는 순서가 됐고, 난 목에 건 고프로를 얼른 빼고 아이를 안을 준비를 했다. 지구는 신기하게도 품에 안기고 나니 울음을 뚝 그쳤다. 아마 양 옆으로 쌓여진 보자기가 엄마의 뱃속 같은 안정감을 줘서일까. 하지만 얄궂게도, 울음을 그치니 지구가 살아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구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입이 쪼물쪼물 움직였다. 그러고보니 가장 먼저 탯줄을 잘랐구나. 또 뭐가 있더라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탯줄은 쉽사리 잘리지 않았고, 세번의 시도 끝에 겨우 겨우 잘랐다. 혹시나 생 살을 자르듯 지구가 아파하면 어쩌나 노심초사 했던 기억이 난다. 아직 덜 익은 돼지껍데기를 자르는 기분이었다. 


지구를 안고 신생아실로 향했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려 실내화를 갈아신었다. 지구를 무사히 신생아실로 인계하고, 지구가 들어가는 모습을 캠코더에 담았다. 어디에 쓸진 모르겠지만, 나는 이걸 담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4K 24p. 하지만 내가 직접 찍는 순간은 이 때 뿐이어서, 촬영 모드는 오토였다. 말하자면 지구를 처음으로 찍은 순간은 오토 촬영이었다. 오토 모드로 무언가를 찍은건 난생 처음이다. 


미소는 다시 수술 대기실로 돌아와 두시간 정도 회복을 하는데, 그 전에 해야되는 작업이 있는지 나는 또 로비로 나와 대기했다. 이 때의 10분? 15분 정도의 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습게도, "이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라는 것을 기억하고 싶어 보이는 풍경을 사진 찍었는데, 지금 그 사진을 봐도 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생각도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보호자분 들어오세요, 나는 정신 없이 미소에게 달려갔다.


미소는 오은영 선생님이 생각나는 사자머리를 한 채(왜 그런 머리가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워 있었고. 해맑게 웃으며 날 반겨주었다. 지구는 어땠어? 지구 봤어? 지구 지금 어딨어? 지구 뭐해? 미소 괜찮아? 미소 미안해. 미소 몸은 어때? 미소 옆에 못 있어줘서 미안해. 미소와 나의 공방전이 펼쳐졌다. 지구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리며 미소는 행복한 표정으로, 얼굴 밖에 못 봤어. 몸은 못 봤어, 하며 아쉬워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소의 눈에 입을 맞췄다. 미소의 입술에도 입을 맞췄다.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발을 만져보니 여태껏 미소에게서 느껴본 적 없는 두께였다. 미소는 마인 부우같다며 웃었다. 나는 마인 부우라는건 착한 마인 부우와 나쁜 마인 부우가 있다며 드래곤볼 세계관 속 마인 부우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카메라를 키고 미소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는 뭐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나중에 이 때 찍은걸 다시 보면 되지 뭐. 21GB, 18분의 용량을 촬영하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나는 먼저 짐들을 잔뜩 들고 505호로 향했다. 입원실은 특실로, 방 양 끝에 놓인 두개의 침대가 보였다. 바닥에서 잘 줄 알고 침구류를 잔뜩 챙겨 주셨는데. 두번이나 왕복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동규 줄거라고 햄버거를 샀는데, 받을 수 있어? 아 어머니 지금 미소 5층으로 올라가는데, 이때 오시면 보실 수 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간발의 차이로 미소가 먼저 입원실로 들어갔다. 우리 엄마 미소 봐야 하니깐 좀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할 정도의 위인은 못 됐다. 엄마는 뒤늦게 엘레베이터에서 만나 햄버거를 전해주셨다. 나는 엄마를 보내드리러 1층으로 내려갔고, 엄마는 나를 데려다 준다고 다시 5층으로 올라왔다. 


미소는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당연히 일어나서 걸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입원실로 이동하는 도중에 신생아실 유리벽을 통해 한번 더 지구를 본 기억에 행복해 보였다. 안원장님이 오셔서 물 금지령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고, 미소는 헤리티지 카페 굿즈로 받아왔던 텀블러에 빨대를 꽂아 물을 마셨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동영상을 찍었던 것 같다. 누워서 휴대폰을 할 수 있게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멀티탭을 연결하고. 충전 코드를 꼽아주고. 아까 마저 못 끝낸 드래곤볼 마인 부우 편의 엔딩, "잘했다! 미스터 사탄, 너야말로 진정한 세계의 구세주다!"를 설명해줬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고. 엄마가 또 오셔서 호박즙과 김밥을 주시고. 미소의 다리에 바디프렌드 안마기 같은 장치를 채워줬다. 에어 커프라 부르는 것 같다. 


여기까지 쓰는 도중에 미소의 얼굴을 닦아주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새벽 1시 34분이다. 지구의 첫 생일이 지났다. 아까 밤 11시쯤 편의점을 다녀오면서 혹시 책이나 잡지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나 둘러봤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그 날에 발행된 책이나 신문, 잡지를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럴만한 정신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젠 9월 7일이다. 이제 우린 잠에 들 것이고, 미소는 내일 점심에 드디어 식사를 할 수 있다. 비록 죽이지만. 엄마가 챙겨준 호박즙도 먹을 수 있겠지. 2022년 9월 6일 오전 10시 13분엔 2.75kg의 지구가 태어났고. 지금 날씨는 19도. 오전 3시쯤 청명한 상태가 예상된다. 아빠와 엄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됐고, 미소와 나는 엄마와 아빠가 됐다. 그리고, 지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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