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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Sep 18. 2022

잘 놀긴 뭘 잘 놀아

맥락 없는 질문이긴 한데. 잘 논다는게 뭔데? 어릴땐 막연하게 아 분위기 잘 띄우고 흥 많고 유쾌하고 모임에서 리더면 잘 노는거구나 생각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만 잡으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고, 술자리도 그 친구가 있냐 없냐로 멤버 수가 폭등한다. 잘 노는 친구가 일찍 들어가야 하면 자연스럽게 술자리도 파한다. 대단하다. 나처럼 노래방에서 조용필이나 변진섭, 언니네이발관 노래나 부르는 사람은 저런 캐릭터에게 일종의 경의감을 느낀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잘 노는거고 내가 못 노는건 아니다. 애초에 용어부터가 글러먹었다 이거야.


초중고 대학교, 넘어서 사회 초중년때 까지 노는 것에도 잘과 못을 붙였다. 정답과 오답이 있는 것 처럼, 토익 점수처럼, 수능 등급처럼. 노는 것에도 수준을 먹이는게 자연스럽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성격이 문제가 있는 것 처럼 느낄 때가 있었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 많은 곳 힘들어하고. 신구대면식이다 엠티다 뭐다 4인 이상 술자리는 죄다 기피하고. 일종의 대인관계 장애는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한 시절이 있다. 나는 못 노는 사람이니까. 랜던 게임이고 자시고, 히포 호프 카운터 옆에 TV에서 틀어주는 무한도전 재방송이 더 재밌는 사람이니까. 오죽하면 한때 술자리에서 "게임 다 끝나면 불러"하고 옆 방에 가 있다가 눈치 없는 새끼로 욕 진탕 먹은 적이 있었다. 두번 다시 그 술자리에 초대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변종인가? 내가 못 노는 인간인가.


나는 정말 즐겁게 논다. 10의 시간을 줬을 때, 나만큼 10을 온전히 다 쓰는 것도 모자라 다음번의 20을 땡겨 쓰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잘 논다 라는 개념에 지배당할 때는 10의 1도 못 논다고 생각했다. 하긴 그렇게 평생 생각했다면 무리도 아니다. 다큐멘터리 역사 공부하고 비디오에 EIDF 녹화하고 만화 그리고 음반 사 듣고 혼자 올해의 감사한 사람들 리스트 작성하고 1인 라디오 녹음하고 색깔 지점토로 캐릭터 만들다가 아멜리에 20번째 다시 보고 하는거. 누군가에겐 방학 어떻게 보냈어, 라는 질문의 최악의 답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누가 정하는가? 윤석열이 정해? 뭐 딩동댕 유치원에서 정해? 아니잖아. 지가 정하는거야, 지가 잘 놀았는지 못 놀았는지는. 


아직도 수많은 방구석 친구들은 마치 자신이 못 노는 인간이라 착각하고, 애써 억지로 동아리를 나간다거나 내키지도 않는 술자리에 기어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우라도 쏟아지거나 친구 하나가 코로나 확진됐다고 약속 파토나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옷 다 벗어 재끼고. 제일 먼저 하는거. 그게 당신의 놀음이다. 잘 놀고 못 놀고도 없는, 나의 놀음이다. 공부하는게 즐거우면 공부가 놀음이다. 20시간 넘게 자거나 배달 시켜 먹거나 창틀 청소 하거나 신작 야동을 보거나 틴더 플러스 가입하고 신나게 라이크 갈기거나 헤어진지 4년 넘은 X에게 자니 보내거나 말거나, 모두가 나의 놀음 방식이다. 거기에 잘과 못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평가해도 되는 남은 없다. 나의 놀이는 나의 만족과 후회만 존재한다. 내가 잘 놀았다는데, 지랄하지 말라 이거야. 수학여행 버스에서 선생님 옆자리에 앉는다고 동정하지 말라 이거야. 어차피 홀수라서 한명은 선생님 옆에 앉아야 하거든? 그러니까 다시는 잘 논다 못 논다 이런 소리 하지도 말고 쓰지도 맙시다. 어찌 됐든 너랑은 안 놀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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