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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Oct 04. 2022

아멜리 쁠랑과 함께

그 타이밍이 왔다. 나름 10년이 넘는 경험상 이건 의심의 여지 없이 그거다.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모르나? 모르겠지. 사실 뭐라고 부를지도 안 정했다. 슬럼프라고 퉁치기엔, 사실 막상 하면 또 곧잘한다. 슬럼프는 뭔가 잘 안되는걸 부르는거 맞지? 그럼 잘 안되는거 말고, 하기 싫어지는건 뭐라고 불러? 그것도 슬럼픈가. 아 근데 슬럼프 맞다 치더라도 슬럼프라고 부르기는 싫은데... 대충 그 시기 라고 부르자. 그 시기가 왔다.


그 시기의 시작은 대학교 3학년때. 학기 중엔 과제질 방학때는 공장질 하며 보내던 날들이지만, 그 와중에도 꾸준히 뭔가를 만들곤 했다. 한참 재밌게 하던 에펙으로 저질 애니메이션 같은걸 만들거나, 캐논 500D로 이런 저런 영상을 찍어보거나. 하다못해 연습장에 만화라도 그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어딘가 올리진 않아도 이게 곧 나의 동력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딱 흥미가 끊기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엔 공모전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뭐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것도 아니다. 심지어 작업을 하기 싫어지는 것도 아니다. 작업을 하고 싶은데, 작업이 하고 싶지 않아서 괴로운 시기다. 힘들어서도 아니고 하고 싶은게 없는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은건 많지만 하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그런 때가 온다. 하지만 다행히 해결책은 알고 있었다.


다름아닌 영화 감상이다. 그냥 아무거나 본다고 괜찮아지진 않지만, <아멜리에>를 볼 때면, 그 시기가 귀신같이 사그라드는 효과를 맞이한다. 이건 정말 마법같은 경험이다. 그 시기 즈음에 국도 예술관에서 아멜리에 재개봉을 했는데, 평생 비디오로만 빌려 보던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찾아갔다. 그게 이 루틴의 시작이었나보다. 아멜리에는 마법 같은 영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면, 얼른 카메라를 들고 뭐라도 찍고 싶어진다. "이런걸 만들고 싶어!"하는 감정이랑은 조금 다르다. 어차피 난 이런거 못 만든다. 죽었다 깨나 해도 못 만들고, 만들 수 있어도 이런걸 만들기 위해 쏟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그 메세지와 상관 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고양시킨다. 아멜리에는 나에게 일종의 치트키인 셈이다.


서울에 올라오고, 그 시기는 2~3년에 한번씩 찾아왔다.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써보려 발버둥 쳤지만, 역시나 아멜리에만한 치트키는 없었고. 그렇게 두번, 세번, 네번 반복하다보니 제 아무리 쟝 피에르 쥬네라고 하더라도. 무뎌진다. 무뎌짐이 느껴진다. 이제 더이상 이건 나의 그 시기를 이겨내게 할 수 없다. 그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왜, "나는 슬럼프때마다 아멜리에를 보곤 했지"라는 말이 멋있잖아. 더이상 그런 소리를 못 하고 다닌다는게 아쉬웠다. 심지어 가장 최근에 본 아멜리에는 보다 잠들기까지 했으니까. 물론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젤리그>라든지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라든지, <가늘고 푸른 선>이나 <12인의 성난 사람들>같이 제2의, 3의 아멜리에는 넘쳐난다. 말하자면 그 시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그냥 쿨하고 멋진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이다. 아멜리 쁠랑은 5년은 뒤에 만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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