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저는 본디 배려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맥락 없이 먼저 쓰고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꿈에 대해 물어볼때, 얼추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 장편 영화 개봉”정도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물론 그 꿈도 매력적이지만, 그 꿈을 달성한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꿈을 향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고, 좀 더 근본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저는 조금 부끄럽지만, 늘 바랬던 꿈을 공식적으로 꺼내기로 합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습니다. 물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의 내가 숨쉬는데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꿈이 될 수 있습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할 수 있다. 뭐를 할 수 있어야 하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작업이 무엇입니까? 네 맞습니다.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저는 결국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거나 협업하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프로였으면 합니다.
오해하진 마세요, 저는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술 약속이 있으면 한번쯤 초대해줬으면 하는 정도의 사람입니다. 물론 그렇게 나간 술자리는 대부분 후회가 되지만, 그 탓은 사람들이 아닌 저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지치거나 질리는 경우가 잦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쪽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는 본디 배려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나의 즐거움보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봐 끙끙댑니다. 내가 던진 농담이 불쾌할까봐, 그렇다고 입 닫고 있으면 지루할까봐, 그냥 리액션만 하면 불편해 할까봐. 이것은 꼭 술자리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일로 돌아가보죠.
아시다시피, 저는 영상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촬영을 한다면 최소한 피사체와 촬영자가 있습니다. 조금만 판이 커져도 동시녹음, 조명, 촬영 감독과 조감독이 필요합니다. 이마저도 최소한의 인원입니다. 보통은 이 각각이 팀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촬영이 끝난 후에도 후반 작업 팀이 필요합니다. 저는 일찌감치 스탭이 4-50명 되는 작업에서 도망쳤습니다. 단어 그대로 도망, 튀었어요.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그것이 나의 한계이고 이겨낼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힘을 합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이 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각자 지 할일만 잘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감독에겐 스탭들과의 소통이 지 할일입니다. 감독은 아무것도 할 줄 몰라도 좋은 스탭과 그들을 기분 좋게 어르고 달랠 수 있으면 좋은 작품이 나옵니다. 말 할 줄 아는 카피바라면 충분하다 이겁니다. 맹세코 감독 혼자 지 잘난맛에 설치는 현장에서 좋은 작품 나오는거 못 봤습니다. 뭐 나홍진이요? 네 뭐 꼭 카피바라는 아니어도 감독의 카리스마나 커리어가 뛰어나도 되긴 하겠네요. 그치만 저는 카리스마도 커리어도 실력도 친화력도 없는 들쥐인걸요.
그러니 저는 점점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일을 꿈꿉니다. 혼자서 떠들거나 물건을 소개하거나.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도 그 연장이에요. 글만큼 개인이 혼자서 판에 뛰어들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저기 어디 아이슬란드 절벽위에 오두막에 틀어박혀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글 말고 또 있을까요? 어찌보면 글로 먹고 살고 싶다가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 글을 잘 쓰지 못하고, 다행히도 다큐멘터리는 조금 만질줄은 압니다. 그럼 이쯤에서 궁금하시겠죠, “다큐멘터리는 혼자서 못 하잖아?”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자료화면과 내레이션만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작품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의 꿈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돈을 벌고 싶다지만, 사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곁에 두고 싶어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미소도 있고 지구도 있습니다. 누굴 세상이랑 등진 인간혐오자로 아시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 곁에 두고 싶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다큐멘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요. 사랑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가짜입니다. 단언할 수 있어요. 그런 작품은 존재해선 안됩니다. 시사나 범죄, 사회 고발 같은 다큐멘터리요? 그들로 인해 피해받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증오나 혐오, 혹은 소재의 흥행이 작품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제가 반년만에 방송국 시스템에서 뛰쳐 나온 이유입니다. 편성팀과 본부장과 작가들이 머리 맞대어 선정한 소재 따위 찍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걸 사랑하지 않아요.
결론을 내겠습니다. 저는 이제 누군가가 꿈에 대해 물어볼 때 “나는 사람 안 만나고 돈을 벌고 싶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그건 조금 사회부적응자 같잖아요? 이것 저것 더 물어보면 귀찮아지기도 하구요. 그러니까 같은 뜻이되 조금만 내용을 수정해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싶어”정도는 어떨까요? 아닙니다 글로 옮기자마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사람을 만나지 않고 돈을 벌고 싶습니다”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사만않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