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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Nov 01. 2022

조금 덜 효율적인 인간상

마지막으로 무게감 있는 글을 쓴게 언제더라. 기억도 안 난다. 물론 내 글에 무게감이 어디 있겠냐만, 매일 쏟아지는 쓰레기들 중에도 유난히 깔끔하게 묶은 쓰레기 봉투 있잖아. 다 똑같이 보여도, 이번엔 내가 좀 신경써서 묶었다 싶은 쓰레기 얘기다. 결과를 떠나서 신경 쓴 적이 있나? 빠르게 대충 대충 가성비 좋게 만드는데에 집착해서 어느새 스피드 레이서가 된 기분이다. 때로는 느리게 걷자 걷자 걷자가 안 통한다. 느리든 빠르든 걷는 것 자체가 기적인 삶인걸. 창 밖을 여유롭게 감상할 시간에 스탑워치를 키고 정해진 시간 안에 목적지를 찍고 온다. 끝났으면 눈 좀 붙이거나 얼른 밥 먹고 미소 교대해주고, 지구 분유 먹이는 삶이. 조금은 피폐하다고 느꼈다. 물론 불행한 삶은 아닌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삶도 아닌 기분.


지친건 아니다. 지칠 수가 있나. 출근해서 하고 싶은 일 하고, 퇴근 하고도 미소의 배려 덕분에 꾸준히 작업 시간을 가지는데. 잠 잘 시간, 씻을 시간 없이 고생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복에 겨웠지. 복에 겨웠는데, 이 복을 내가 제대로 잘 활용하고 있나? 나에게 주어진 복을 만끽하는가? 뭘 자꾸 물어봐, 아니니깐 이렇게 글 쓰고 있지. 단편적으로 말하자면 질이 부족한 삶이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정해진 시간 내에 완성할 수 있는 작업만 덤빈다. 하루에 두시간. 점심 시간까지 합치면 세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작업. 업로드는 데일리로 이루어지고, 집안에서 촬영해야 하는 작업. 또는 이전에 찍었던 작업으로 한정된다. 글을 쓰더라도 호흡이 길거나 몰입이 필요한 글을 일절 쓰지 않는다. 언제든지 도중에 끊고 이어 써도 괜찮은 글. 괜찮은 편집. 괜찮은 촬영을 시도한다. 사실 그 시도조차 잘 하진 않지만. 점점 더 효율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물론 판을 더 키우고 싶다 이런건 아니에요. 제가 가진 그릇에 비해 지금 벌려놓은 판은 거의 반포 자이거든요. 막연히 새로움이 필요하다, 뭐 슬럼프라던가 지루하거나 그런 것도 아니에요. 단지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단 습관적으로 환경 탓을 했지만, 미소만큼 육아에 헌신적인 친구도 없고. 우리 회사만큼 개인 작업을 보장해주는 기업도 없습니다. 촬영 장비도 만족스럽게 갖췄고, 협업하고 싶은 출연자들. 촬영 공간들. 편집만 기다리는 촬영본들, 지금 가지고 있는 환경으로 충분합니다. 중요한건 나의 태도입니다. 단지 하나 하나 쳐내기에만 급급한 저에게, 그 많은 재료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히려 작업을 그만둬야 하는 때가 아닐까요? 아니 그건 아니지. 작업은 작업대로 이어가되, 태도를 바로잡는게 맞지. 아무렴. 난 일단 뛰면서 어디로 뛸지 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지금까진 눈 감고 뛰었지만요. 


그러니 태도를 고쳐 잡겠습니다. 항상 네번째 문단에서 결론을 지으려고 하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로버트 맥키 당신 떄문이야. 어쨌든 속도도 중요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 까지 붙잡고 늘어지겠습니다. 퀄리티 마지노선을 설정하겠어요. 원래 있긴 있었는데, 없는 것 처럼 작업을 찍어냈거든요. 윤동규 콘텐츠는 늘 이정도의 퀄리티는 보장한다, 하는 선을 만들고 지켜야 해요. 그걸 넘지 못하면요? 뭐 얼마나 큰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냥 업로드 좀 늦어지는거지. 단지 그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해봐요, 식당에서 일찍 나오는 간도 안 맞는 음식을 먹는 것과. 조금 기다리더라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 것의 차이 말이에요. 지금까지는 기껏 구한 좋은 재료들 한 입에 우겨넣기 바빴지요? 이제 좀 사랍답게 차려 먹겠습니다. 한 입 한 입 음미할게요. 내일 뭐 세계가 멸망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꼭 꼭 씹어 삼키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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