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카페에 필터 커피(보통 이게 가장 값이 싸니까) 하나 시키고 글을 쓰는 오후가 좋다. 프리랜서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번은 카페를 갔어서, 이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지 잘 모르고 살았다. 한때는 카페가 일종의 일터였다. 여기서 편집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로케이션을 찾고 기획안을 고치곤 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도 힘들어 점심시간 한시간이라도 카페를 다녀오고 싶단 생각을 종종 한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리 유쾌하진 않은게, 카페 작업의 포인트는 하염없이 앉아있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갈 시간이 정해져있는 카페 따위 회의실이랑 뭐가 다르냐 이거야.
그러고보면 내 안에서 카페의 역할이 조금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거기 가면 작업 더 잘 돼"에 가까웠는데, 요즘에는 "거기 가면 뭔가 안해도 돼"가 됐다고 해야 하나. 노트북이나 충전기나 하다못해 책 한권이라도 없으면 카페 도착했다가도 집에 가서 가져오곤 했는데 지금은 그냥 커피 홀짝이며 창 밖을 보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휴대폰이 있으니까 안심할 수 있는거겠지. 단어 그대로 정말 아무것도 안 들고 카페를 가보면 10분도 못 있을거다. 허세 떨어서 죄송합니다. 결국 뭔가 안해도 되는 공간이지만, 뭔가 안할 생각은 없다. 그러면 조금만 수정해서. "뭔가 가치 있는걸 안해도 돼"로 바꿔도 되겠습니까?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