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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Jan 14. 2023

자존감의 발견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 없이 탐구하지만, 거기에 “자존감”이란 단어를 집어넣은 적은 없습니다. 내가 멋지면 좋아하고, 가끔 내가 구리면 싫어합니다. 혹시 자존감이 내가 멋지든 구리든 좋아해야 하는 감정인가요? 그럼 저기 자아도취랑 뭐가 다른가요. 아마 뭔진 몰라도 다르긴 다르니까 이렇게 다들 자존감 자존감 떠들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저는 잘 모르겠단 말이죠. 그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둘 중 하나 아닙니까? 존나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이거나. 존나 별 것도 없으면서 자신에 취해서 살아가는 사람이거나. 저기 둘 다 별론데요?


사전적 의미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건 그걸 내가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아니겠습니까? 결국 자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아니라 연인으로 쳐보세요. 가끔씩 이런 모습은 밉고 저런 모습은 서운하고 하더라도 사랑한다는 마음 자체는 흔들리지 않잖아요? 뭐 흔들립니까? 그럼 연인이 아닌거겠죠 뭐. 어쨌든 하물며 타인을 향한 마음도 밉고 서운하고 한데, 스스로에게 향하는건 또 얼마나 롤러코스터겠습니까. 중요한건 밉고 구리고 아쉽고 같은 마음이 아닙니다. 사랑은 좀 더 근본적인 마음이에요. 강아지 귀여워서 잘 키우다 이제 지겨워서 버리는게 사랑이 아니라구요. 개똥밭에 구르고 소금 하나 안 친 주먹밥으로 끼니를 떼워도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가 중요한게 아닐까요?


그러니 자존감이란 핑계를 대며 모든걸 다 합리화 하진 마십시오. 잊지 말아요.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그런 나를 사랑하지만, 아직 한참은 철이 덜 든 사람입니다. 1분 1초가 멀다 하고 한심해지고 금방 나의 한심함에 후회를 합니다. 차라리 모르고 살면 질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끝날테지만, 후회하는 순간 그것은 미성숙으로 이어집니다. 그렇지만 저만 그런가요? 질이 떨어지는 사람보단 미성숙한 사람이 수만배 더 낫습니다. 그렇다면 미성숙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말해 뭐합니까, 보다 더 성숙한 사람입니다. 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떤게 미숙한지를 알아야 하고. 어떤게 미숙하지를 알려면 나의 미숙함을 돌아봐야 합니다. 나의 미숙함을 돌아보셨나요? 아우 진짜 미친 새끼 왜 태어났냐 죽어버려, 생각이 들면 자존감이 낮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이런 모습은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겠군, 이란 생각이 들면 조금 높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중요한건 이래나 저래나 철없는 놈인건 똑같단거고. 그보다 더 중요한건, 둘 중 하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 친구와 자존감이 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해보니까 난 자존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 주제에 나는 자존감이 높다거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이해가 안된다거나 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조금은 부끄러워 자존감에 대한 글을 써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여전히 자존감이 뭔지는 모르지만, 자존감이 뭔지 몰라도 상관 없다는 생각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땡큐 자존감. 기념으로 자존감 삼행시나 하나 할까요? 

자/자메이카 통다리

존/존나 맛있네요

감/감사히 먹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자메이카 통다리 먹어본적 없어요. 삼행시를 위해 적당히 구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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