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아말피 지류 박물관에서 산건 이니셜 도장만이 아니었다. 사실 딱히 산 것도 아니고, 산 물건들 담아준 봉투였을 뿐인데… 문제는 그 색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는 것과. 이걸 기록하는게 이 콘텐츠의 존재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녹색 봉투는 내 정체성과도 같은 에피소드다.
처음 물건을 기록하고 싶을 때에, 지금 생각하면 놀랍게도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의 반응이 신경 쓰였으면 아트박스에서 산 도라에몽 지갑 같은걸 왜 찍었겠나. 친구에게 선물 받았고, 전역 기념으로 오래동안 썼고.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는데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버리기엔 추억이 있고. 그렇다면 언젠가 사라져도 슬프지 않게, 아니 노골적으로 말해 언제든지 버릴 수 있게. 물건을 찍고, 이야기를 남기자. 사진과 글로 기획했던 콘텐츠가 영상과 내레이션, 자막이 됐고. 음악이 들어가고. 숏폼이라는 형태에 태워져 사람들에게 닿고, ‘이딴걸 누가 보겠어’가 수백만 뷰를 차지하고. 정신을 차리니 나는 조금, 변하지 않았나 싶다.
이 마음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후 7개월쯤 뒤, 프랑스 여행에서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여행에 왔으니 응당 기념품이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는게 맞지만, 그 의도가 너무 저열했다. 이건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건 뷰가 좀 나올까? 이건 이야기거리가 충분히 많은가? 이건 전에 산 물건과 겹치지 않는가? 스스로 수많은 검열을 거쳐가며 끌리지 않는 물건을 사거나, 끌려도 사지 않거나 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이래야 하지 않나. 무슨 자아 분열이라도 오는 듯 방황하고 있는 와중에, 이 봉투를 발견하게 된다.
단순히 물건을 담아주려는 직원의 입장에선, 이 봉투가 뭐라고 그렇게 눈을 반짝거리며 제발 하나만 더 줄 수 있나요? 물어보는 동양인이 조금 어이가 없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게 뭐 말도 안되게 고급스럽거나 특이하거나, 실용적이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하지만 단연코 이탈리아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물건이다. 색감도 형태도 크기도 의미적으로도 완벽했다. 뒤늦게 이탈리아에서 산 물건들 속에 이걸 발견했을때 뭔가 소름같은게 돋았던 것 같다. 아 그래! 나 이런거 찍고 싶었어, 이런걸 이야기하고 싶었어!
뷰는 의외로 잘 나왔다. 댓글도 많이 달렸다. 하지만 그런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