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언젠가부터 "라이프 스타일" 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느꼈는데, 그건 "라이프"는 "스타일"이 되는 순간 의미가 변절된다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물론 라이프, 스타일 처럼 범위가 넓은 단어를 “이렇게만 사용해야 해!” 따위가 한심한 발상이고, 각각의 단어의 의미보다 그 둘을 합쳤을때 생기는 시너지가 결국 지금의 단어로 정착된거지만. 꽤나 많이 "라이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스타일"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으로서 그 둘의 합은 마치 민트맛 팥죽 같은 해괴함을 띈다. 꼴 보기 싫다는 뜻이다.
1.
까놓고 말해 라이프스타일은 사는 방식이라는건데, 그걸 글로. 영상으로. 말로 풀어내는 순간 삶의 일부분이 된다. 일부분이 아닌 삶이 어디있느냐. 세상의 모든 표현은 전체의 조각일 뿐이다. 반대로, 어떤 조각이든 자신을 표현해준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모든 창작물은 창작자를 대변한다. 그게 싫다는건 아니다. 다큐멘터리도 꼭 그 인물의 모든것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한가지 면에 집중할수록 훨씬 더 훌륭한 작품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2.
결국 조각이 전체를 대변하는 늬앙스에 반감을 가진다. 아닌데? 이게 내 전부라고 얘기한 적 없는데? 하지만 라이프라고 부르잖아. 그건 문제가 있다. 다큐멘터리는 피사체의 기록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피사체의 본질을 칭하는 단어다. SF, 로맨스, 액션, 코메디와 같이 나열되어야 하는 하위 장르다. 극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뮤직비디오와 같이 놓일 수 있는 개념은 아니란 얘기다. 단어의 활용이 거창해질수록 반감이 생긴다. 유튜버나 스트리머들을 크리에이터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진데, 본질은 본질로 남겨두고. 본질을 이용한 장르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 한다. 이름 짓기 귀찮다고 본질을 장르로 대체하면 결국 본질이 무너진다. 이름이란 그런 것이다. 다이소에 2층에 주방, 공구, 문구 코너는 있을 수 있어도 삶 코너는 있어서는 안된다.
3.
지하철에서 ‘그런데 난 라이프 스타일이 왜 이렇게 싫지?’에서 시작된 얘기라서, 허점도 많고 구멍이 숭숭 뚫린 논리지만 이렇게 옮겨 쓰지 않으면 휘발된다. 해 질 때 쯤에는 한 적도 없는 생각이 된다. 생각은 옮겨 적어야 한다. 적은 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나의 무지를 광고해야 한다. 초등학교때 한참동안 마을버스를 말 버스라고 부르고 다녔는데, 딱히 글로 적을 일은 없고 발음도 비슷해서 3학년이 되어서야 ‘말처럼 빠른 버스라는 뜻이 아니었어?’라고 충격을 받았었다. 제 2의 말버스 사태를 막기 위해서, 제 1의 라이프 스타일 사태를 펼쳐본다. 좋은 다큐멘터리는 소재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한다. 소재에 애정이 없다면, 소재로 인해 피해 받는 집단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라이프 스타일이 다큐멘터리인 척 하는게 역하다. 다큐멘터리 매거진을 얼른 시작해야겠다. 이게 내 라이프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