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포 발사

by 윤동규

0.

저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능력은 유머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코메디언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게 재미있고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지는 알아야 합니다. 본능적이면 좋고, 후천적으로 개발해도 괜찮습니다. 유머는 패턴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파고드는 과정은 즐겁습니다. 만약 유머를 공부하는 것이 괴롭고 지겹다면, 당신은 유머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사 수업에서 발칸반도에 대해서 배울 때 속으로 ‘발칸포 발사’를 떠올리지 않았나요? 십중팔구 유머에 흥미가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1.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는 없습니다. 뭐 유머에 선택받은 사람만이 창작자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반 고흐가 뭐 스탠딩 코메디 해봤자 얼마나 잘 하겠어요. 모든 창작물이 유머가 필요한건 아닙니다. 글 시작부터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유머라고 해놓고선 말을 바꾸게 되네요. 반 고흐 저 도움 안되는 인간.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쓰는 단어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유머에 해박해야 합니다. 반드시 코메디 무대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지만, 언젠가 한번 올라가고 싶은 갈증이 있거나. 개그 콘서트 따위를 시청하며 ‘내가 해도 저거보단 웃기겠다’란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건 개그 콘서트를 보지 않는 것이지만요.


2.

저는 음악 콘텐츠를 만듭니다. 저는 과학 콘텐츠를 만들어요. IT 콘텐츠를 만드는데요? 그럼 필요 없는거 아닙니까 유머? 그게 당신이 글러먹은 이유입니다. 유머는 단순히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게 만드는 힘이 아닙니다. 운동 좀 하라는 소리에 “난 철인 3종 경기 나갈 생각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꼴과 같습니다. 유머는 고급스러운 화법입니다. 당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골든 티켓입니다. 티슈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적어도 전달은 되겠죠. 그렇지만 그 티슈의 다음 행선지는 십중팔구 길바닥이나 쓰레기통입니다. 그게 당신이 만드는 콘텐츠의 말로입니다. 유머가 가득한 창작물은 참 쉽게도 섭취되고, 효과적으로 분해됩니다. 소화기관에 부담도 없고 식감도 좋으며 대부분의 것들과 궁합이 좋습니다. 그러니 나는 웃긴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니 괜찮다, 라는 생각은 집어 넣으세요.


3.

이제 슬슬 결론을 낼 생각인데, 뭐 유머가 없는 콘텐츠는 쓰레기다. 유머도 모르는 놈들은 이 바닥을 떠나라. 너희가 만든건 매주 월수금 19시 이후에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놔도 쓰레기 규격 미달로 수거 안해가니까 각자 집에서 알아서 소각해라 이 쓰레기들아,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건 아닙니다. 좋은 작업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그냥 저의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이 악물고 ‘나는 유머 없이 성공하겠어’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중학교때 영어 선생 조승자씨가 너무 싫어서 이 악물고 ‘영어 못한채로 성공하겠어’한 적도 있거든요. 수능때 외국어 9등급으로 증명했습니다. 한 문제 풀고 4번으로 찍었는데 그 한 문제 답이 4번이더라구요. 어쨌든 그냥, 조금의 위기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유머의 역사나 코메디 공식 뭐 이런걸 공부하란건 아니지만. 최소한 뭐가 재미있는 유머고, 어떤게 불쾌한 유머인지. 좋은 유머를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해봐요. 어디서 뭐가 유행이라더라 그거 우리도 하자 무-야호 이지랄 좀 그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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