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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을 직접 건내주기 위해 미소와 하루를 계획했다. 점심 시간에 식사 모임, 그 다음은 카페에서. 6시 이후 만남이 애매하니 친구의 작업실을 들렀다가, 끝으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나는 것으로. 식당, 카페, 작업실, 야외 공간까지 치밀하게 약속을 잡았다. 처음엔 일종의 일처럼 생각했다. 저희 결혼식에 참여해주세요, 라는 메세지면 사실 모바일 청첩장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또 넉넉한 시간을 투자하여 그 사람의 동네를 찾아갔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는 채로. 그냥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고. 그게 뭐 어른의 조건이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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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한명 한명 만나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하지만, 이야기의 주제는 꼭 우리의 결혼식은 아니다. 근황부터 시작해서 일 이야기, 취미, 관심사, 어떤 카메라를 쓰고 있고 또 어떤 영화를 봤는지. 단순히 친구와 약속을 잡고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 라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상견례도 아니고 사실 차이가 없는게 정상이지만. 그게 조금 묘했다. 그냥 일상적인 만남, 일상적인 대화일 뿐인데. 그 보통의 만남과 평범한 대화가 감사하게 느껴졌다. 왜 감사할까. 뭐 1~2만원짜리 식사를 대접했을 뿐인데 축의금으로 2~30만원을 줘서. 뭐 이런게 감사한게 아니다. 어차피 다 기억하고, 그 친구의 경사에 충분히 축하를 해줄거니까. 뭐 그럼 돈 잘 버는 친구는 더 감사하고, 형편이 어려운 친구는 덜 감사하겠는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는 이 감사함의 원인을 찾아나섰다.
2.
어렴풋한 결론은. 결국 내 사람이어서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만나서 뭘 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고 이전에. 만남 자체에 감사함이 묻어져 나온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것은 나의 노력일까? 천만인게, 나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끽해야 카카오톡 생일 리스트에 뜨면 치킨 한마리 보내주는 정도일까. 더 많은 신경과 더 많은 관심을 주지도 못하고. 몇몇 친구들은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내 곁에는 사람이 없는게 맞다. 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게 정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사람으로서. 내 곁에서. 나를 축하해주고. 나의 감사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게, 그 자체가 감사했다. 9월 26일 일요일은 참 멋진 하루였다. 최근에는 일기라고 느껴지는 글을 쓴적이 없다. 우연히 그날에 했을 뿐인 생각. 그날의 주제와 이야기 묶음이었다. 그 날을 쓰는 것이 얼마만인가. 이토록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게 언제였더라.
3.
하지만 천성이. 혹은 자라온 환경이 워낙 무신경해서. 이걸 말로 뱉거나 하는건 창피하다. 웅희한테는 못 참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하루는 그렇게 그냥 지나갔다. 이틀이나 지난 지금, 그날이 언젠가 사라지고 휘발되고. 아아 그런 적이 있었지, 정도의 희미한 기억인게 벌써부터 아쉬워 기록한다. 촬영할 기회를 놓친 다큐멘터리는 찍지는 못해도 적기는 해야지. 좋은 시간과 좋은 날을 모아보면, 좋은 삶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