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지 찬가

by 윤동규

0.

하양지 작가의 우리는 시간문제를 또 다시 완독했다. 이제는 몇번째로 보는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쇼생크 탈출이나 아멜리에, 라디오 데이즈 등이 있다. 피쉬 스토리가 여기에 들어갈랑 말랑 아슬아슬한 단계. 영화든 소설이든.


1.

나는 언제쯤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픽션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작품 내의 등장인물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기분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어릴 적 아즈망가 대왕의 졸업식에 실제로 졸업하는 듯 한 기분을 느꼈었다. 물론 그들은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겠지만, 나만 혼자 빠져나온 것 같아서. 꽤나 후유증이 길었다.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 우리는 시간문제를 보고 난 후에 가장 이런 기분이 깊게 스며든다. 이것은 이야기의 종류와 상관이 없다. 판타지든, SF든, 학원물이든 어떤 세상에서도 그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 리얼한 세계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물이 살아있다. 우리는 시간문제는 이야기나 소재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특히나 그 캐릭터가 너무나도 선명하여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실제로 수현이 집을 나가는 즈음 부터는 책(전자책이지만)을 덮고 싶어진다. 아아. 이러다가 타임 스퀘어에서 만나고, 곧 별장으로 떠나겠지. 그레놀라 섬까지가 아무런 걱정 없이 보기 좋다. 그 이상은 조금 버겁다. 그런 주제에 잘도 1년에 두세번은 보고 있지만.


2.

다른 훌륭한 작품과는 다르게, 하양지 작가나 우디 앨런의 경우엔 질투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질투가 느껴지는 작품은 어떤 것일까. 내가 언젠가 만들고 싶은 작업을 누군가가 먼저 행했을 때. 그 작업의 퀄리티가 애매해서, 내가 만약 투자받아서 만든다면 이것보다 더 잘할 것 같을 때. 그냥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잘나갈 때, 등이 있다. 그들은 어느 것도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의 작업은 언제나 내가 꿈꾸던 것이지만, 동시에 현실에서 그려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그 뒤를 쫓을 뿐이다.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투자를 아무리 받는다고 해도 그들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자신은 없다. 무엇보다 주는 것 없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럼 이렇게 계속 부러워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정체되어 아무것도 못하느냐. 그래선 안된다. 이 기분을 작업으로 이어가야만 한다. 아 좋다, 하고 끝내는건 독자이며 관객일 뿐이다. 나는 작가와 연출자이며, 그들이 잡아준 확고한 방향성을 따라 갈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조금 더 편한 출발선에 서 있다. 가상의 인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물의 생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들은 잘 만들 것이고. 나는 꾸준히 발견할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들을.

작가의 이전글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