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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업이란 뭘까에 대한 고민을 밤새도록 하고 있었다. 글을 여섯번째 썼다 지우다 보니 조금은 정리 된 것 같아서 이번만큼은 한 호흡으로 써보려고 한다. 여기 좋은 작업 요건의 세가지 후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업. 스스로가 좋아하는 작업. 전문가가 좋아하는 작업.
1.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좋은 작업인가? 단박에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가 떠올랐다. 더이상 이야기 할 것도 없다. 반대로 네멋대로해라의 최고 시청률은 3.9%였고, 멜로가 체질은 1%대를 기록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수는 좋은 작업의 기준이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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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좋아한다고 좋은 작업일까? 그럴려면 박근혜도 좋은 대통령으로 인정해줘야 한다. 박근혜까지 갈 필요도 없다. 애초에 이딴게 정답이면 왜 내가 밤새도록 고민하고 있냐. 그냥 다 좋은 작업이라고 치면 되는거 아닐까. 하지만 똑같이 최선을 다해 만들었어도 "이건 좋은 작업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작업이 있고. 비공개로 돌려서 아무도 못 보는 작업도 있는걸. 창작자의 판단은 좋은 작업의 기준이 될 수 없었다.
3.
그럼 전문가가 나서면 어떨까. 프랜시스 맥도먼드나 메릴 스트립이 좋은 배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준이 뭐야? 둘 다 오스카 여우주연상 세번이나 탔어. 와우! 대단하다! 그럼 개리 올드만은 36년째 그저 그런 배우였어? 말꼬리 잡고 늘어지려는건 아니지만. 사실 전문가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아카데미는 커녕 선댄스나 청룡, 서울 독립 영화제 근처에도 못가는 작품들이 수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누가 그 작업들을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전문가의 판단은 좋은 작업의 기준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좋지 못한 작업의 기준이 될 수는 없었다.
4.
여기까지 궁지에 몰리다가, 좋은 작업이란 말에서 작업을 사람으로 바꾸어 보았다. 생각보다 명쾌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전세계 인스타그램 팔로워 1등은 호날두다.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을 한바퀴 쭉 둘러보면 그게 얼마나 헛소린지 알 수 있다. 매 해 전문가들이 뽑은 올해 제일 좋은 사람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사람? 그딴 상 있지도 않지만 뽑혀도 하나도 안 기쁘다. 니들이 뭘 알아.
5.
그럼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 눈을 감고 떠올려보자. 좋은 사람이라. 자연스럽게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신기하게도 길에서 쓰레기 줍기, 욕 안하기, 폐지 줍는 할아버지 리어카 끌어주기 이런 항목보다, 좋은 사람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그들이 왜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이유는 그 다음이다. 심지어 몇몇 얼굴은 딱히 이유도 생각 안나. 그치만 넌 좋은 사람이야. 내가 알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다 알아. 이제야 조금 실마리가 잡혔다, 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글이 너무 지저분해서 처음부터 다시 썼다. 지금부터는 코난으로 치면 마취시키고 난 다음이니까 집중해서 들어주세요.
6.
결국 좋은 작업이 좋은 작업이라고 느끼는데엔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누가 부모님을 "어렸을 적 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사랑으로 키워주시고 비싼 학원비나 등록금을 내 주셔서"좋아하는가. 그냥 좋아하고, 사랑하고, 그 다음에 이유를 나열한다. 사랑하는데 조건을 찾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하는 작업은, 일단 사랑한다. 이유는 그 다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일단 사랑하는 것 처럼. 조건은 핑계일 뿐이다. 제 아무리 많은 조건이 갖춰졌다고 해도, 사랑받지 못하면 좋은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느냐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작업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좋은 작업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7.
이제 글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같은 주제의 글을 두시간이나 붙잡고 있었더니 엉덩이에 땀이 다 차는데, 그래도 결론은 명쾌하게 짓고 가야지. 좋은 작업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명명할 수 없다. 오로지 작업을 즐기는 개인과 개인의 사랑의 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크기가 크다고 해서 더 좋은 작업인것도 아니다. 단지 더 유명한 작업일 뿐이다.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 아닌 것 처럼. 비틀즈의 음악이 최고의 음악은 아니다. 단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일 뿐이다. 우리는 아마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좋은 작업을 하고 있다. 그걸 좋은 작업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좋은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아씨 괜히 마지막에 비틀즈 예시로 들어서 힘이 팍 꺾이네. 비틀즈랑 마이클 잭슨은 그냥 넘어갑시다. 아씨 아저씨들 때문에 기껏 정한 결론 다 망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