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놈이 더 잘 잔다

by 윤동규

0.

나쁜놈이 더 잘 잔다, 라는 말이 있다. 있었나?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그럴듯하지 않나. 그냥 영화 제목인가. 어쨌든 있다고 치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원래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 나쁜놈이 더 잘 잘 수 있는 이유는, 나쁘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불편하게 하는건 모기나 젖은 이불이나 층간 소음 따위가 전부이기 때문에, 시원하게 숙면을 때리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는지 따위는 퇴근길 전봇대 앞에 무단투기 해버리니까, 잠을 못 잘 수가 있나.


1.

우리는 어쩌다, 우리의 안녕을 위하여 나빠지기도 한다. 그럼 그 나쁜 짓을 하고 난 밤을 기다려보자. 발을 뻗고, 이불을 반쯤 덮고 눈을 감아보자. 오늘 나의 하루를 떠올려보자.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행동은 하면 안됐는데, 그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나는 그때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후회와 반성으로 가득찬 시간을 보내다 끙끙대며 잠에 들었다면, 오늘의 이야기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이 공감되지 않고, 슬며시 '왜 그런거에 신경을 쓰지?'라는 의문이 든다면, 당신은 10중 8, 9... 사실 10까지 가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당신은 빌어먹게 나쁜 놈이다. 잠은 좀 어때요. 잘 자겠지 뭐.


2.

어찌보면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게 있다. 만화책 많이 본게 티가 나서 창피하긴 한데, 이럴때 떠오르는건 전쟁이나 싸움이다. 오늘 내가 몇명을 죽였는지 생각한다면 어떻게 군인이 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아픔이 뼈저리게 슬프다면 어떻게 무인이 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케이스에 두개의 반박을 할 수 있는데. 먼저, 지금은 전시가 아니다. 둘째, 전시라고 해도 주변 사람에게는 그러지 말자. 꼭 '사회는 전쟁이다'따위의 말을 맹신하는 사람일수록, 냉혹하고 냉정하고 잔인한게 곧 일을 잘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일은 잘 할 수 있지.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곧 일을 잘하는거라고 친다면. 하지만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문장으로 옮기고 나면 민망해지는 단어들이 몇몇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너무 당연한 말이라서 민망해지곤 한다. 지금 일 잘하는 것 중요하지. 그렇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당장 이번의 일이 좋은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좋은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기분 개박살내며 만들어진 좋은 일 따위, 가봐야 얼마나 갈 것 같은가. 네 뭐 솔직히 진짜 잘하면 얼마나 개차반이라도 쭉 잘하긴 하더라구요. 성격 더러운 히치콕이면 얘기 다르지. 그치만 우린 대부분 잘해봤자 성격 더러운 CU 연신내점 점장 정도일 뿐이잖아요.


3.

이야기하다 보니 좋은 예시가 떠오르는데, 뮤직비디오에 있어서는 난 두명의 감독 밑에서 일했었다. 한명은 낮부터 술쳐먹기 바쁜 쓰레기같은 여자 감독이었고, 한분은 쭉 존경하던 훌륭한 감독님이었다. 뭐 촬영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두 감독들에게 엄청난 걸 배웠다.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저렇게 해야지. 여자 감독의 경우(남녀를 구분하는건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지 성별 구분은 아닙니다) 타임테이블을 절대로 지키지 않았는데, 단 한번도 타임테이블 내에서 끝난 경우가 없었다. 문제는 그 타임테이블 자체가 24시간이 넘어갔다는 것이다. 새벽 5시에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5시에 촬영 종료. 그런데 그걸 어긴다. 시원하게 무시한다. 조감독이었던 나는 5시 넘어가면서 스텝들에게 사과하러 다니기 바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언제 끝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왜냐면 감독이라는 인간이 저기서 수다떨고 놀고 있으니까요. 결국 촬영은 오후 1시에 끝났고, 8시간이나 추가로 일한 촬영팀과 조명팀은 한시간도 못 자고 곧바로 다음 촬영장으로 넘어갔다. 조감독 부사수와 나는 장비 반납하러 가는 길에 졸음 운전으로 이승탈출을 꿈꿨고, 몇개월 후에 3달 연속 일이 안들어와서 때려치웠다. 회사에 윤상 1집 LP를 놔두고 온게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4.

안좋은 이야기는 길게 했지만, 힘 빠지게도 좋은 이야기는 간단했다. 아침 6시에 시작, 새벽 2시에 종료. 아니 이렇게 지키지도 않을 타임 테이블을 짠다고? 내가 만들면서도 불신이 가득했다. 로케가 포천 - 홍대로 나뉘어져 있었고, 심지어 첫 장면은 수영씬인데. 이 감독 뭐 하는 사람이지? 짜잔. 12시 반에 촬영 종료. 그리고 딱 잘라서 말해, 두번째의 경우가 훨씬 더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다. 일을 잘하는 것이 결과물만 좋게 나온다는 걸로 쳐도 두번째가 더 훌륭하다. 여자 감독의 경우는 촬영때마다 촬영 감독과 조명 감독을 구하는데에 애를 쓴다. 누가 그런 감독과 일하고 싶겠냐. 약속 하나도 안 지키고, 입금 죽어라 늦게 하고, 촬영 당일날 촬영 내용 통보하는 감독을. 두번째 감독님의 경우엔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기획 회의부터 촬영 감독님이 붙어서 6시간 연속으로 회의를 하고, 난 막차 끊겨서 택시 타고 갔다. 왜 24시간 카페에서 만나는줄 알겠네. 그리고 그게 좋았다. 나는 지금도 감독님이 당장 내일 도와달라고 하면 달려갈거다. 잠 잘 자는 나쁜놈들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결과물만 잘 나오는 씨발놈이랑. 결과물도 잘 나오는 좋은 사람이랑. 뭐가 더 옳은 삶이냐. 뭐를 더 추구해야 할 것 같냐. 어떤 삶을 살았을 때가 더 너를 위해 울어주고 웃어줄 사람이 많겠냐.


5.

원래 글을 나눠서 쓰지 않고, 한 호흡으로 쓰는데. 어제는 점심시간에 글을 쓰던 도중에 카페에 막내들이 우연히 커피 마시러 와서, 한참을 수다 떤다고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틀이나 지나고 글을 이어 쓰는데, 특수한 경우다보니 좀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하루 사이에 어제의 저 씨발놈이 단단히 벌을 받은 것이다. 모르겠다 벌이라면 벌이고, 별 것 아니라면 아닌거겠지만. 어쨌거나 나와 작년 9월부터 겨루고 있었던 안건에서 임원들의 참여로 대패한 것이다. 회사에서 2년 반이나 일한 사람을 고작 8개월 일한 내가 이길줄은 몰랐는데, 승부는 임원과 그 나쁜놈과 나의 삼자대면에서 내가 임원진에 팀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지은 그의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못 봤지만, 임원분이 회의를 중단하고 "야 너 표정이 왜 그래? 지금 장난 치러 왔니? 나 시간 많아서 여기 온거야? 회의하는데 그딴 표정 짓는 사람이 어디있어?"라고 극대노한걸 미루어 보아. 아마 나를 비웃거나 같잖은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싶다. 뭐 나는 빠질테니 너희가 알아서 입장 해결하고 보고해, 라고 빠져나가서. 나는 아 이렇게 또 질질 끌겠구나, 싶었는데. 곧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내가 원하는 안건을 모두 양보했다. 지가 아무리 우기고 싶어도 저렇게 개털리고 나니 우기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겠지. 애초에 입장이 다른게 아니라 마냥 우기고 있었을 뿐이니까. 아마, 나쁜놈은 자기가 털리고 나면 못 자겠지? 난 좋은놈이라서 이렇게 승리의 축배를 들며 굽네치킨을 뜯어 먹었지만, 그래도 내심 그의 착잡한 기분이 안쓰러워서 자다가 깨서 이렇게 위로를 건낸다. 나는 사람 씹을거면 그 사람을 평생 안 볼 생각으로 씹는다. 고등학교때 한명. 미술 학원에서 한명. 군대에서 세명. 첫 직장에서 한명. 저 위에 여자 감독 한명. 그리고 지금 저 인간까지. 평생 미워할 사람을 정해놓고, 이 인간들에겐 미움 받아도 된다고 정했다. 그렇지만 제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마음이 아픈건 어쩔 수 없다. 마음 아픈거 1. 꼬시다 9. 오늘도 치킨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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