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예시

by 윤동규

0.

민망할 정도로 예상대로. 1부를 쓰고 나니 2부를 쓰기 싫어졌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쓰는건 이래서 위험하다. 그 주제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기 전에 써야 한다. 미루면 미룰수록 냉장고 속 쉰 반찬처럼 건드리기 싫어진다. 그럴땐 억지로 꾹 참고 글을 쓰다보면, 글 자체에 애정이 떨어지기 십상이다. 전혀 다른 주제로 선회할 필요가 있다. 그럼 그럼. 참을성이 없는게 아니라 개척 정신이 뛰어난거다.


1.

만약 두 사람이 똑같이 하루에 한시간을 투자한다고 가정해보자. 1은 보고, 듣고, 읽는 시간. 2는 그리고, 말하고, 쓰는 시간. 10년이 지나고, 1과 2 중에서 누가 더 좋은 작업을 만들어낼까? 극단적인 예시지만, 원래 성향이란 극단적으로 치우쳐진 성향들끼리 맞붙기 마련이다. 아침엔 I였다가 저녁에 E가 되는 사람의 이야기 따위 재미없다. 물론 두가지 모두 필요한 시간이지만, 과연 둘 중 뭐가 더 중요할까? 흥미로운 소재다. 조금만 더 좁혀보자. 소설가로 한정 지어서. 매일 글을 읽는 1과. 매일 글을 쓰는 2의 싸움. 왜 A, B가 아니라 1, 2냐면 한영 전환하기가 귀찮아서 그만.


2.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작업을 완성시킨다"라는 쪽에 집중하면 2의 압승이 예상된다. 2는 10년동안 매일같이 해오던 작업을 또 하면 된다. 대충 1723번째 작업일거고. 얼핏 읽으면 381번째 글과 581번째 글이랑 자기복제가 아닌가 싶을 만큼 유사하다. 그만큼 많은 글을 썼으니까. 그리고 그만큼의 글을 읽은 적은 없으니까. 등장인물들은 2의 지인이나 2가 보고 듣고 접한 인물에 한정될 것이다. 즉 어떻게든 완성은 되지만. 시덥지않은 결과물이 아닐까? 정도로 추측할 수 있겠다.


3.

그 다음. 어떻게든 완성시켰다고 치고, 두 작품간의 깊이를 생각하면. 당연히 1의 압승이어야 한다. 1은 10년이란 시간동안 수많은 작품들을 접했고, 2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수많은 이야기와 주제, 배경, 지식, 세계를 체험했다. 1은 기본기도 탄탄하다. 문장력은 자신도 모르게 절로 갖춰졌을거고, 어느 타이밍에 문단을 나눌지 어떤 단어를 사용할지도 2의 수백을 곱한 만큼을 다룰 수 있다. 그래서 이 미련한 가정. 1과 2 중 누가 더 뛰어난 작품을 쓸 수 있는가? 라는건 1의 압승이 예상된다. 축하드립니다.


4.

하지만 이쯤에서 반전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둘 중 누가 더 뛰어난 작품을 쓰는지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이건 100m 달리기나 수영, 마라톤, 역도가 아니다. 우월을 가리는 것은 공모전이면 충분하다. 작품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훌륭한 작품을 쓰기 위해 살아가지 않는다. 훌륭한 삶을 살아가길 원할 뿐이다. 책을 읽지 않는 소설가. 영화를 보지 않는 감독. 음악을 듣지 않는 뮤지션이 다 무슨 상관인가.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훌륭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영화보다 더 기구한 순간들. 음악보다 더 위대한 소리가 넘쳐난다. 중요한건 그것을 기록하는데에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보고, 듣고, 느끼는데. 왜 몇몇 사람들만 훌륭한 작품을 쓰는가? 그들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껴서인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면 내 글이 안끝나잖아요? 중요한건 더 많이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사소함. 쉽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 찰나의 기분, 코 끝을 스치는 향기.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굳이 펜을 들고, 종이를 펼쳐. 그것을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리 해야지만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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