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로 옮기면서 처음으로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글을 쓰는 루틴은 첫번째,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옮긴다. 두번째,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하고 싶은 말들을 덧붙인다. 세번째, 그렇게 만들어진 글들을 토대로 억지로 결과를 쥐어짜낸다. 요컨대 이런식이다.
최신가요를 듣는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트렌디함이 언젠가부터 나에겐 역으로 촌스럽다는 생각을 가져다준다. 유행어를 모르고, 대세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동경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애써 둔한 모습을 연기한다.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민하다보면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럴때엔 마음 편하게. "어디에 서 있는지 알 수가 없어 헤매이는 나"라는 포지션에 있다고 장점 결론을 내리게 된다.
비문학 지문처럼 예시로 사용한 글을 조금 해체해보자. "최신가요"라는 소재는 머릿속에 있는 키워드다. 글을 쓰기 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고 있었고. 최근에 셀레나 고메즈의 음악을 추가했는데, 내 플레이리스트엔 이례적으로 최신 가요이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최신요로 운을 띄었다. 트렌디함에 대한 나의 성향을 나열하고. 그 안에서 내가 취하고 싶은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다가, 결국 그 고민 자체가 나의 모습이라는 결말을 쥐어짜냈다. 그럼 만약에 "트렌디한 내가 창피할때"라는 주제가 있었다면 어떤 글이 나왔을까? 궁금해 하지 말고 써보자. 브런치 기술을 최대한 써보자고.
줄곧, 유행을 따라가는 나를 부끄러워 했다. 아주 어렸을 때 머리에 젤이나 왁스를 바르는 것 부터. 세로 줄무늬 패턴의 레이어드 티셔츠. 통을 잔뜩 줄인 교복 바지나 심지어 군대에서 손이 베일 듯 한 주름이 잡힌 전투복까지. 이에 관한 그럴싸한 추측은, 어떠한 체제에 굴복되고 싶지 않은 발버둥이 아닐까. 나는 늘 전체에 속하고 싶지 않아서 괴로워했다. 하지만 전체에서 돋보이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은 일찌감치 포기한다. 유행을 앞서간다거나 더 나아가 유행을 창조하는 모습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나의 마지막 남은 선택지는, 유행에서 독보적으로 멀어지는 것이었다. 모두가 윤고딕을 사용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던 대학교때, 궁서체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어떤 교수는 저런 폰트를 사용하냐며 화를 내기도 했고, 또 어떤 교수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것은 일종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나의 테스트였다. 말하자면 나에게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능력이 없고 게으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돋보이고 싶은 자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주제를 정하고 쓴 글과 그냥 머릿속에 나오는대로 쓰는 글의 차이가 조금은 보이는가? 애석하게도 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예컨데 연습장에 샤프로 끄적인 콘티가 채색까지 끝마친 정식 원고보다 재밌는 경우,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만 확고하다면 그걸 어떻게 나열하든 큰 상관은 없다는 생각이다. 왜 결론이 이렇게 나지? 주제를 정하는 글쓰기에 대한 이점을 부각시켜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유머를 광고하게 된 사회에 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이래서 문제다. 나 쓰고 싶은 글들만 써재껴서는 결국 일기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은 마치 청탁받아서 쓰듯이,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쓸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니고. 점심시간 거의 끝났으니까, 주제 없는 1부 끝.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