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빌 브라이슨의 산문을 보고, 뭐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런 생각이 드는 글이다. 왜,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를 보고 나서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 않은가. 눈알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온탕에 30분 재워놓고 싶어지긴 해도, 몸을 움직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은 꼭 수준과 비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빌 브라이슨의 글이 수준이 낮은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게 묘한거다. 글이 천박하고 거친데, 수준이 높고 우아하다. 천박함과 우아함이 원래 같이 묶이는 단어였나? 짜고 밍밍한 소리 같지만, 정말로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이 재미란 것은, 우아함과 천박함 따위의 이야기보다 훨씬 앞서있는 개념이다. 권투 경기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주먹을 휘두르는 스타일이 어떻고, 아웃 복서, 교묘하게 반칙을 쓰거나, 쓸데없는 움직임이 많고 뭐고 다 뒤로 하고, 결국 이기냐 지냐의 싸움이다. 재미있는 글은, 독자를 완벽하게 KO시킨다. 우리는 실컷 얻어맞고 링 위에 누워서 천장이나 바라보면 된다.
1.
가끔은 분석할 수 없는 스타일이 있다. 천부적인 스타일. 우사인 볼트가 왜 빠른지를 연구하면 뭐하냐 같은건데, 그래도 같은 신발을 신거나 비슷한 자세를 취하거나 하는 정도는 해볼만하다. 1~2초의 기록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단지 내가 존경하는 사람과 같은 신발을 신는 것만으로도 가득차는 뭐 그런게 있지 않는가. 그래서 본격적으로 빌 브라이슨을 흉내내기로 했다(그렇다고 이렇게 괄호를 사용하는 빈도를 높인다는건 아니다. 맞을 수도 있지만, 한국 문학에서 괄호는 찐따의 상징처럼 쓰이기도 하니 조심할 필요는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또 많이 쓰는게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직 그의 책 한권도 다 읽지 못했고, 딱히 생각해본적도 없다. 솔직히 70대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얼마나 하겠나. 그러니 남은건 많이 쓰기 뿐이다. 점심시간은 12시 30분 부터지만, 주문한 배달 음식이 20분에 도착해서 10분만에 식사를 마쳤다. 두고보자 빌 브라이슨. 나의 실력을 보여주마. 잠깐 화장실만 다녀오고 나서.
2.
그리하여, 나름의 빌 브라이슨의 특징을 정리했다. 흉내내기 위해선 먼저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나. 먼저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특징은 시니컬이다. 시니컬은 단어 그대로의 뜻만 따지면 부정적 냉소적과 같아 보이지만, 그걸 넘어선 단어 특유의 늬앙스를 가지고 있다. 무슨 늬앙스인지 까지는 모른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거면 차별점이나 특징이라고 썼겠지. 얼버부리고 싶으니까 늬앙스라고 쓰는거다. 여행 에세이를 쓰면서 여행을 싫어한다는 점이 거의 그의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디 앨런도 그렇고, 혹시 나는 시니컬한 인간 군상을 좋아하나? 높은 확률로 그럴지도 모른다. 시니컬한 인간은 자연스럽게 표현력에 유머를 더한다. 부정적인 말들을 유머 없이 뱉어대면 그냥 성질 더러운 뻑킹 레이시스트 영감탱이일 뿐이다. 그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에, 항상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더하여 얼핏 유머가 이 글의 핵심인 것 처럼 비춰지게 버무린다. 이게 꼭 자신을 향한 비난의 방패 역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우연히 시니컬할 뿐일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을 웃기는 것은 강아지 꼬순내 정도의 끔찍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3.
말했듯, 그의 글을 많이 읽어본건 아닌 입장에서. 경험을 글로 옮긴다는 특징을 가진다. 여행 에세이가 그럼 경험한걸 쓰는거지 뭔 당연한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 3번은 빌 브라이슨의 특징이 아니라,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의 특징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또 쓸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글을 읽고 뭐가 됐든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40정도 차올랐다면, 나머지 60은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다 였다. 그것은 결국 유머와도 이어지는데, 내가 추구하는 작가는 재밌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 재밌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방금 막 생각했다). 그 차이는 얼마나 사소한데에서 천재성이 드러나냐인데, 9개월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끙끙대며 나온 유머는 한계가 있다는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우스운게 훨씬 경제적이다. 그게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나는게 여행 에세이인데,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에서 얼마나 멋진 유머를 내뿜냐는건 결국 같은걸 보더라도 작가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순발력의 차이다.
4.
아쉽게도 점심시간이 지났고,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되고 싶지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도 중요하니까. 빌 브라이슨 특집 2부에서 계속됩니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한권은 읽고 와야겠다. 스필버그 영화 캐치미 이프유캔 달랑 한편 본 놈이 스필버그의 특징을 다룬답니다. 동네 사람들 날카로운거 좀 꺼내보세요. 윤동규 주둥이에 좀 쑤셔박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