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예찬

by 윤동규

0.

아이의 운동회나 연주회, 여행지 등 소중한 순간에. 다들 카메라 꺼내서 찍기 바쁘다며, 직접 현실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차피 찍어도 보지도 않을거면서 다들 휴대폰 액정만 보고 있다느니. 카메라 밖으로 나와서 현실을 즐겨라느니. 그들에게 진짜 참다 참다 한마디 하자면, 진짜 지랄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왜 안보겠는가. 거지같이 찍었으니까 안보는거지. 왜 거지같이 찍었겠나. 거지같은 폰으로 찍으니까 그렇지. 아니 휴대폰 아니라고 해도, 몇백만원짜리 DSLR에 1점대 렌즈를 끼웠다고 치더라도. 그냥 대충 꺼내서 툭 툭 찍으니까 다시 안보는거지. 정 비판적으로 한마디 안 하고 못 배길거면, "찍지 말고 느껴라"라고 말할게 아니라, "그따위로 찍을 바에는 그냥 찍지 마라"로 고쳐야 한다.


1.

그렇다고 못 찍으면 찍으면 안되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기록의 소중함과 중요함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이게 얼마나 폭력적인 이야기인지 손쉽게 느낄 수 있다. 일기 쓰는 사람 옆에서 "쓰지 말고 지금을 느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얼마나 병신같은가. 같은거다. 심지어 영상은 일기보다 화면을. 사진보다 움직임을. 공간의 소리와 심지어 온도까지 담을 수 있다. <할아버지는 매번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 글 안에는 정작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없다. 소중한 것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인간 본연의 가치에 닿아 있다. 조금 힘을 주어 말하자면, 인간은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살아간다. 영상 촬영은 그걸 담아내는 행위다. 누구 하나 무시하거나 얕잡아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2.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무언가를 강조하기 위해 반대편에 있는 가치를 폄하하는 법이다. 당신이 휴대폰 들고 찍어댄다고 딸의 운동회에서 아무것도 못 본건 잘 알겠다. 그렇다고 현장을 두 눈으로 느끼는게 최고고, 그걸 촬영하는게 한심하다고 할 필요까지는 없잖은가. 딸이 서른, 마흔 되어서 운동회 영상을 봤을때 어떤 기분인지 떠올려봐라. 꽤 괜찮을 것 같지 않나?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어? 그래 많이 양보해서. 너는 옆에서 그냥 보는 사람들 보단 감동을 조금 덜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의 소중한 기록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할지 상상해보자. 자동차 블랙박스 따위의 카메라로 찍힌 고등학생 커플의 하교길 댄스가 얼마나 많은 마음을 녹였는지. 체육관 강당에 울려퍼진 MIC drop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웃음짓게 했는지. 거기다 대고 직접 니 눈으로 봐, 촬영하지마 이딴 소리 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장면들이다.


3.

화를 좀 가라앉히고. 물론 글을 쓸때 항상 감정을 싣지만,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을 티내는 것 만큼 촌스러운 글은 없으니까. 이해한다. 다 이해한다. 왜,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숀 펜 같은거지. 때로는 그럴 때가 있는거지. 알겠다 그래 잘 알겠는데, 그래도 다큐멘터리 만드는 입장에서는 조금 빡칠수도 있잖아? 내가 이해해줬으니까 너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니. 방송국 PD나 영화 감독만 다큐멘터리 찍기에는 세상에 멋지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너무나도 많단다. 그걸 꼭 기록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현장에 없던. 혹은 태어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도 함께 행복해 하면 참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 같지 않니? 군대 수송부에 이런 간판이 있었어.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우리는 <찍고, 보고, 모으자>어때? 언젠가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하더라도. 우리가 찍은 아름다운 기록들을 보고 인류 말살 정책을 취소할지도 모르잖아. "지구는 참 아름다운 별이군. 너희만 빼고 말이야!" 하고 초콜렛으로 만드는 광선을 맞을 수는 없잖아. 그럼 그런걸로 알고 이만 글 줄일게. 안녕.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빌 브라이슨 해부하기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