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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Jul 27. 2020

사랑해, 파리 (Paris, Je T'Aime)

Gus Van Sant

옴니버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꼭 그 영화의 모든걸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열개의 단편 중 두세개만 건져도 꽤나 좋은 기억을 가져갈 수 있다. 또는 브런치에 영화 리뷰를 쓰고 싶은데, 영화에 대한 지식은 바닥인 작가들이 노리기에도 좋다. 최소한 리뷰 쓰기 전에 한번은 더 봐야 되잖아? 두시간 짜리는 보기 전부터 진이 빠지는데, 옴니버스 영화는 몇번을 반복해도 부담이 없거든. 그래 그런 이유로 선정한거 맞다. 지식 바닥인 작가도 내 얘기고. 아니 작가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쓰레기통을 비운다. 하나의 행동으로 인물이 가게의 직원이고, 막내라는 것을 설명한다. 몹시 경제적이다. 


열 여덟편의 영화 중, 구스 반 산트의 단편은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톰 티크베어의 단편이 압도적이지만, 그건 아무래도 조금 실험적인 요소가 있잖아? 단편의 정석 같은건 코엔 형제나 구스 반 산트의 것이 좋더라고. 그 왜. 단편 좀 써볼까! 하고 시나리오 작법서 목차라도 봤으면 아는 것들. 단편을 이루는 훌륭한 요소들. 하나의 사건. 하나의 공간. 그리고 조그마한 반전. 맥키는 그놈의 마틴 스콜세지를 죽어라 예시로 들지만, 사실 구스 반 산트의 단편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좋지 않나? 완벽하잖아. 또 쉽잖아. 얼마나 쉬웠으면 내가 이건 브런치에 써도 되겠다 생각하냐고.


뿐만 아니라 같은 앵글, 장소를 반복해서 사용한다. 장소가 반복되는게 두려우세요? 대비되는 인물을 등장시키세요!


이야기가 한줄로 적힌다고 꼭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치만 단편이잖아요. 단편은 한줄로 정의내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자 우리 같이 이 영화를 한줄로 영업해보자. 친구한테 추천하면서. 이거 진짜 재밌어. 무슨 내용인데? 당신의 대답은. 뭐 멋있는 말 할거 아니면 대충, "서로 첫 눈에 반한 두 남자 이야기"같은걸로 퉁쳐지지 않을까? 물론이다. 이건 그걸로 충분한 이야기다. 반전 같은게 중요한게 아니라. 첫 눈에 반한다, 라는 감정 자체가 전부인 영화다.


첫 눈
둘째 눈
한 대여섯째 눈


상투적인 표현으로 첫눈에 반했다고는 했지만, 사실 감독은 상당히 여러번 시선을 준다. 에이 설마 구스 반 산트가. 시선을 주는 것을 놓칠까봐 반복했을리는 없고, 진짜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을 때의 행동을 묘사했겠지. 첫 눈에 반하다, 그 다음 스텝은 역시 자꾸만 눈이 가다 아닐까. 남자는 시종일관 남자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남자는 처음엔 남자를 신경쓰지 않지만, 자신을 자꾸만 쳐다보고 말을 거는 남자에게 남자도 무언가를 느낀다. 아 거지같은 옴니버스 영화. 캐릭터 이름이 없으니까 헷갈리잖아. 긴머리 남자는 커트, 짧은 머리 남자는 저스틴이라고 정할게. 왜 긴머린데 커트냐니. 커트 코베인의 커트다. 물론 저스틴은 팀버레이크 얘기지만.


인물이 가까워지면 인물간의 간격도 가까워진다. 정석중의 정석이다. 캡쳐해서 똑같이 따라 찍으면 반타작은 할거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 전까지 커트의 대사가 대부분인데, 아주 가끔씩 저스틴의 대답으로 인해 독백을 대화로 만들어준다. 사실 저스틴의 대사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이지만, 불어가 서툰게 읽힐 정도는 아니기에 반전에 더욱 힘을 가한다. 만약 저스틴이 커트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으면. 두 인물은 엇갈리지 못하고 함께 나아갈 것이다. 그럼 그 다음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럼 이 공간을 벗어나겠지. 그리고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지겠지. 그건 과하다. 서로를 엇갈리게 한 다음, 뒤늦게 뛰어가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괜히 정석이 아니라니까. 


커트가 구구절절 했던 말들을 저스틴은 하나의 표정으로 보여준다. 참으로 경제적이야.


어줍잖게 영화를 분석한 척 했지만, 사실 그냥 좋아하는 영화라서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다. 만약에 오오 이 사람 영화 좀 보는데? 라고 생각한다면 다음번엔 조금 더 얕은 지식을 뽐내도록 하겠다. 어차피 다른 영화 리뷰들보다 더 전문적이고 빛날 수 없다면, 차라리 더 얕고 지저분한 쪽으로 가는게 맞잖아. 그렇지만 내 리뷰의 깊이와 영화의 깊이는 다르니까. 충분히 재미있고 추천하는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그렇게 좋은 영화면 왜 이딴 식으로 썼냐? 그러게요... 사실은 나만 알고 싶은 영화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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