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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수정

by 윤동규

버킷리스트를 물어보면, 지난 10년간은 다큐멘터리 장편 영화의 극장 개봉을 답하곤 했다. GV도 하고. 김혜리 기자랑 인터뷰도 하고. 남이 끊어준 비행기 타고 영화제도 가고. 그런 삶도 훌륭하지만, 이상하게 그런 삶을 살기까지의 내가 선명하지가 않다.


아마도 호흡의 문제다. 쭉 단거리 선수였다가 언젠가 마라톤 메달을 따고 싶다는건 조금 넌센스다. 하다 못해 꾸준히 단거리라도 뛰고 있음 몰라도, 마지막으로 달린게 횡단보도 건너다가 빨간불로 바꼈을 때 라니. 꿈이야 뭐 누구나 꿀 수 있지만, 꿈을 뱉는 내가 적어도 창피하지는 않아야 하잖아.


말하자면 꿈이, 현실적으로 나아가는 최종 단계로서 존재하는게 아닌. 지금 나의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망상으로서 존재한다. 뭐 그것도 꿈은 꿈이지만, 그 꿈과 이 꿈은 구분하는게 좋다. 게으름을 기적처럼 해결해 주는게 꿈의 역할이 아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꿈을 잘못 설정한 것 같다.


예컨데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고 싶어요>라는 꿈이 있다고 치자. 물론 비현실적인 꿈이지만, 최소한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선 배우를 해야 한다. 배우 중에서도 영화를 해야 하고, 영어도 능숙하게 다뤄야 하며 오스카 투어를 떠나줄 소속사도 필요하다. 말하자면 꿈을 이루기 직전에 짜잔 하고 시작하는게 아닌, 삶이 꿈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극장 개봉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가? 다큐멘터리도, 영화도 어떻게 끼워 맞추면 된다 싶지만. 장편은 글쎄요. 극장 개봉은 더더욱 글쎄요? 10년 전의 버킷 리스트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가져가기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유튜버란 직업이 있고, 휴대폰으로 영화를 봐요. 아무렇지도 않게 2배속으로 틀고, 옆으로 돌리는걸 싫어해서 세로 포맷이 유행한답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어요. 좋은 쪽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과감하게 버킷리스트를 수정합니다. <다큐멘터리로 먹고 사는 삶>. 본질은 비슷해요, 극장 개봉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다큐멘터리로 먹고 살 수 있으니깐 가능한거겠죠. 하지만 꼭 극장 개봉. 장편 같은건 아니어도 될 것 같아요. 유튜브든. 틱톡이든. 릴스든.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그걸로 먹고 사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1분이든 10분이든 2시간 10분이든. 극장이어야 할 필요도 장편이어야 할 필요도 영화여야 할 필요도 없어요. 나 많은거 안 바란다. 다큐멘터리 만들고 살면 됩니다.


1. 유튜브에 길이에 상관 없이 다큐멘터리 작업을 올립니다.

2. 길이를 줄이고 세로 형태로 재편집해서 틱톡과 릴스에 올립니다.

3. 2의 작업을 통해 1의 시청을 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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