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의 359도 다른 기질
쌍둥이를 낳기 전까지는 정말 순진했다.
"같은 부모, 같은 환경이면 비슷비슷하게 자라겠지?"
완전 헛소리였다..
알콩이는 진짜 모범생 아기였다. 울어도 조용하게, 젖 먹을 때도 차근차근, 기저귀 갈 때도 얌전하게.
달콩이는.. 완전 외계인, 배고프다고 조리원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다른 친구들 다 깨우고, 기저귀 갈 때도 바둥바둥.
'와~ 재는 왜 저러는 거지?'
사실 나는 걱정을 많이 안 했었다. 유아교육 전공자로 유아교육 현장에서 15년 동안 버티면서 진짜 별의별 부모들 다 봤거든. '나는 절대 그렇게 안 키워야지!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하면서 맨날 다짐하고 있었어.
시험관으로 어렵게 얻은 소중한 아이들이니까 더더욱 조심스럽고,
그때는 정말 몰랐다. 얘네가 이렇게까지 다른 종족일 줄은...
생후 8개월쯤? 다른 엄마들 따라서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해줘 보자'
첫날, 아이들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선생님이 마이크를 사용해서 "안녕하세요~ " 하는 순간.
앙~~~~~~~
달콩이 울음 대 폭발.
목소리도 큰 녀석이 대성통곡을... 다른 아기들은 다들 웃고 있는데 너는 뭐냐??..
심지어 알콩이도 신기하게 쳐다본다. 너는 뭐냐.. 왜 우는겨?
다른 엄마들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애기 좀 달래보지.. 저렇게 우는데 애기를 왜 데리고 오는 거야?'라는 눈빛들..
그날 수업은 완전 망했다.
달콩이 울음 덕분에 30분도 못 버티고 퇴장했다.
집에 와서 남편과 분석했다.. 답은 모름이지 뭐..
"다음 주는 괜찮겠지? 오늘 처음이니까 그랬겠지?"
그래서 다음 주에도 용기 내서 갔다.
두 번째, 세 번째.. 계속 똑같았다.
이번에는 미리 수유도 하고, 낮잠도 실컷 재우고, 기저귀도 갈고, 간식도 주고.. 단단히 준비하고 갔지..
그런데 선생님이 "율동해 볼까요?" 하면서 신나는 음악을 틀자마자, 또 울음 폭발,
선생님이 미안한 듯이 "집에서도 그럴까요?" 물어봤어.
"아뇨, 집에서는 괜찮은데... 왜 여기서는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
6번 정도 시도했나? 결국 손들었다.
그때는 정말 몰랐었다. 달콩이가 소리에 극도로 민감한 아이라는 걸.
마이크소리, 스키퍼 음악, 아이들 울음소리까지 모든 게 달콩이한테는 힘들었다는 걸..
문화센터는 때려쳤지만, 집에서 아이들 관찰하는 재미는 쏠쏠했다.
18개월쯤 되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얘들 기질이 다르구나.
그것도 359도 다르다..
어느 날 알콩이가 스티커 놀이하는 걸 보고 있었는데, 완전 신기하더라.
보통 18개월 아기들은 스티커 주면 대충 막 붙이잖아? 그냥 여기저기 마구마구 찰싹찰싹
그런데 알콩이는..
스티커를 조심조심 들고, 동그라미 선에 딱 맞춰 붙이려고 끙끙거리는 거야.
조금이라도 삐뚤어지면 떼서 다시 붙이고, 또 떼서 다시 붙이고...
'아~ 도대체 몇 번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거야~'
결국 지 맘에 들 때까지 붙이더니 '이제 완벽해!'라는 표정으로 마무리했다.
한 장 붙이는데 어림잡아 2분은 걸린 듯.. 달콩이라면 5초면 끝났을 일을..
그림 그리기도 완전 극과 극이었다.
달콩이는 파스넷 잡고 휙휙 막 그려대고,
알콩이는 선을 절대 침범하지 않으려고 엄청 조심조심..
이때부터였나 보다. 완벽주의 DNA가 장착된 것은..
이때부터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공부는 할 만큼만 해라..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더라..'가 내 공부철학인데 우리 집의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달콩이가 4살 어느 날 영어 알파벳을 나한테 설명하고 있더라. 신기해서 영상도 찍어놨네..
그리고 어느 날은 이상한 글씨를 써대더라.. 솔직히 어느 나라 말인지를 몰라서 찾는데 1년 걸렸다.
애기 글씨라서 삐뚤거리는 데다가 남편도 나도 첨 보는 글씨라서..
나중에 알았다. 1년 후에... 러시아어과 졸업한 친구가 러시아어란다..
뭐시라??
남편도 나도 모르는 말은 얘는 어찌 알고??
새삼 느꼈다. 유튜브의 힘을..
어쩌다 알고리즘이 아 아이에게 러시아 영상을 보여준 건지는 모르겠으나,
영상 열심히 보더니 혼자 수첩에 러시아 알파벳? 을 적어놨더라.
와~ 우리 가족에는 이런 유전자는 없는데.. 뭔 일이대??
내가 낳았는데도 신기할 따름이다..
'이 자식에게는 공부를 기대해도 되는 거야??'
알콩이는 완전 다른 종족.
이 녀석은 공부와는 담쌓아부렀다. 그것을 내가 5살 때 느끼게 해줘 버렸다..
이것도 대단한 거지..
그래서 공부에 미련을 두지 않고 가르쳤다.
'설마.. 지가 초 3이 되었는데도 한글을 못 읽겠어?'라고 생각하면서 한글 몰라도 강요 안 했다.
물론, 외할머니는 애달팠다. "알콩이 한글 좀 가르쳐야!!" "냅둬! 지가 할 때 되면 하겠지!"
외할머니랑 엄마의 싸움의 발단은 항상 알콩이의 공부였다!
7살에도 기역을 보고 뭐냐고 물어보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눈웃음치고 있다!
이러는데 어찌 사랑 안 할 수 있겠어!
이뻐 이뻐~
글자 하나 모르면 어떠리.. 이렇게 이쁜데..
그런데 7살 후반에 갑자기 모든 글자를 술술 읽는다. 뭔 일이래?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알콩이의 완벽주의가 발동한 거였다.
완벽하게 마스터하기 전까지는 들키기 싫었던 거지..
틀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거지..
물론 지 스스로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많이 시도했을까 싶지만..
정말 웃긴 건, 내가 박사논문에서 기질을 하나의 변인으로 연구했다는 거야.
그때는 그냥.. 논문 변수 중 하나였어.
"아, 기질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근데 환경이 더 중요하겠지~" 이 정도..
완전 틀렸다.
내 아이들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달콩이가 문화센터에서 울었던 것도, 촉각이랑 청각에 극도로 민감했던 것도 기질 때문이었다는 걸 한참뒤에 깨달았어.
알콩이의 스티커 다시 붙이기도, 한글 늦은 습득도, 모두 완벽주의 성향이랑 신중한 기질 때문이었고,
기질이 환경을 이기더라.
아무리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줘도, 애들은 각자의 기질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반응했어.
"아! 기질이 이렇게 강력한 거였구나! 환경만으로는 안 되는구나!"
뭐~ 그때 그대로야.
달콩이는 영화관 가면 큰소리에 울고, 귀 막고, 급기야 탈출하고.. 배우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8살인데 10살 수업진행 중이고.. 1개 가르쳐주면 10개 아는 이상한 넘.
알콩이는 숙제할 때 글자 삐뚤어지면 다시 지우고 바르게 쓰고, 하나 습득하려면 엄마 인내심 테스트하고. 그래도 가르쳐 주면 안 잊어버려.
가끔은.. 아니.. 여전히 엄청 답답해..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안다.
얘들은 나랑 다른 생명체라는 걸..
얘들을 내 스타일로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달콩이에게는 적당히 조용한 환경을..
알콩이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완벽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걸..
기질이 환경을 이긴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8년을 걸려서 깨달은 진실이야. 아이들이 문제가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거였다는 걸..
그리고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엄마인 나도 성장하더라.
이게 진짜 육아야. 애도 크고 엄마도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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