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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Jan 11. 2021

필사

조각 수필 #4

어떤 일을 끝 냈을 때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마지막은 시작과 항상 다르다. 그 마지막에 느끼는 시작과의 다름을 위해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필사를 시작하며 나에게 건넸던 질문, “하루키의 글을 왜 필사하려는 걸까?”의 대답은 “하루키를 따라 쓰면 하루키처럼 되지 않을까?”였다.

구체적인 질문에 막연한 답이었다.


열흘하고 이틀, 열두 번의 베껴쓰기를 마무리했다.

그 열두 번 동안 열두 걸음 정도라도 하루키에게 가까워졌을까. 한 발자국의 거리가 대략 40센티미터라고 치면 겨우 5미터 남짓 가까워졌겠다.


글 속의 하루키는 매일을 뛰었다. 실제로도 매일 뛰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매일 하루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는 뛰었고 나는 걸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걷기라도 했다면 다행이겠다.


오늘 수업의 제목인 [마지막 필사], 필사(筆寫, 베끼어 씀)를 보며 나는 왜 필사(必死, 죽을힘을 다함)를 떠올렸을까. 하루키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라고 했다. 나는 겨우 5미터 남짓 하루키에게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을까. 과연 혼신의 힘을 다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의 목표는 구체적이었다. ‘뛰면서 걷지 않기’. 목적은 있었을까.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라 했다. 내가 하루키를 베껴 쓰려는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하루키에게 겨우 5미터 가까워진 나에게 다음번 숙제를 만들어본다. [책 전부를 필사하기]

그렇게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한다. 반복하면 마지막도 조금은 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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