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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Jan 22. 2021

숫자 세기

조각 수필 #6

항상 숫자를 센다.

계단을 마주할 때면 그 계단의 개수를 센다. 오르며 세고 내리며 센다. 왜 그러는지는 알지 못한다. 딱히 불편함이 없어서일까. 여전히 그러고 있다.


그 숫자가 3의 배수나 2의 배수로 맞아떨어지던가 혹은 열 개로 맞아떨어지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그렇지 않다고 해서 크게 거북하거나 난처해지는 건 아니다. 다만 그냥 그렇게 할 뿐이다. 왜 그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간혹 일곱의 배수로 맞아떨어져도 내심 안도한다.

운전을 하면서도 가로수의 개수를 센다던가 고속도로에서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거칠게 만들어 둔 무늬의 개수를 세기도 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흰색 줄무늬의 개수를 센다. 길을 걷다가 문득 보도블록의 개수를 세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버스 안에서 손잡이의 개수를 세는 건 당연하다.


수도꼭지에 매달린 너트의 모서리 개수를 세기도 하고 도서관 바닥의 타일의 수를 가로와 세로로 세어보기도 한다. 걸으며 내 보폭에 맞추어 딱 떨어지는지 맞춰보기도 한다. 맞지 않으면 다음번엔 맞추어 걸어보기도 한다. 왜 그러는지는 알지 못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게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옆사람과 대화를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테이블의 꼭짓점의 개수를 세고 있고 벽에 그려있는 꽃잎의 개수가 짝수인지 홀수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는 게 아니었다. 우연히 나눈 대화에서 나만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무척 놀랐다. 


계단을 오르면서 계단을 세어보지 않는 이유는 뭐지


그게 나만의 습관인걸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후로 계단의 개수를 세고 있는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거 왜 하니.'


지하 주차장에서 집으로 오르는 계단의 개수가 열한 개로 되어있다. 제일 마지막 계단은 열여섯 개다.

한 층에 열한 개의 계단이 한 쌍으로 되어있으니 한 층을 오르려면 스물두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항상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아아 아홉, 열


열한 개의 계단이지만 아홉을 세며 두 계단을 밟고, 마지막 열을 세면서 스스로에게 열개의 계단을 맞추어둔다. 그리고 마지막 열여섯 개의 계단은 여덟으로 나누어 두 번을 센다. 왜 그러는지 모른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아직 불편함은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네모진 책상과 건너편 서랍의 모서리, 손잡이 장식에 있는 아주 작은 모서리까지 그 개수를 센다. 왜인지는 모른다. 일종의 강박증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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