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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Jan 25. 2021

느릿느릿, 빨리빨리

조각 수필 7

나는 빠르면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나이, 마흔. 그 나이를 훌쩍 넘어서야 이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게 조금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빠르고 정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생겨났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첫 직장에서 빠르게 행동하고 주어진 일을 빨리 해결하면 늘 칭찬을 들었다. 누구보다 빨랐고 정확했다. 이전까지는 모르고 있던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왔다.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해결을 했고 그 결과도 제법 나쁘지 않았으니 직장에서의 내 모습은 늘 빠르고 정확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옳은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현대사회에서는 정말로 필요한 능력이었으니까.


하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모습의 부작용이었을까.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은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모습으로 변해있었고 흔히 이야기하는 까칠한 성격이 되어있는 나를 마주했을 때엔 스스로에게 거부감마저 생겼다. 어쩌면 변해버린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 모습을 피해왔던 것 일지도 모른다. 내면의 내 모습과 밖으로 보이는 내 모습이 충돌하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본연의 질문을 피하기만 했던 것 같다. 아니 실제의 내 모습, 내면의 내 모습을 마주하기가 겁이 났던 것이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을 때면 언제나 제일 늦게 도시락통을 정리해야 했다. 군대에서 선임이 되기 전까지는 동료들과 식사하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밥을 퍼 넣어야 했다. 결국 심각한 식도염과 위궤양에 시달렸다. 위궤양은 십이지장 궤양으로 번져 몇 달간 약을 먹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세상은 나에게 "빨리빨리"를 요구했고 살아남기 위해 "빨리빨리"라는 마법에 취해 "빨리빨리"를 몸에 욱여넣었다. 결국 내 몸에 맞지 않는 "빨리빨리"는 몸과 마음,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었고 요즘 세상에서 말하는 패배자가 되어있었다. 깨달았을 때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빨리빨리"가 미덕을 넘어 상식이 되어있는 사회구조에서 느리게 살고 싶어 하는, 아니 느리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도 분명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벗어날 수 없기에.


느림이 게으름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 빠른 것이 부지런함과는 같은 맥락이 아니라는 것이 상식으로 공유되는 사회에서 조금 더 느리게 살고 싶다는 건 욕심인 걸까.

아직도 나의 내면과 마주할수록 내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직도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다는 확증일 것이다. 느긋해야지 하면서도 내 몸에 퍼져있는 "빨리빨리"의 마법을 완전히 씻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싶다.


오늘도 나는 아직까지 찾지 못한 내 모습을 마주하며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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